2015년 12월 20일 주보 칼럼 - 왜 보다는 어떻게

  거실에 나와보니 둘째 아이가 바닥에서 울고 있습니다. 보아하니 누나가 밀어 넘어뜨린 것이 분명합니다. 요즘 들어 부쩍 힘겨루기가 많아진 아이들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아이를 무섭게 쳐다보며 물었습니다. ‘동생 밀었어?!’     아이는 무슨 말을 하려고 합니다. 참을성이 부족한 저는 다시 한번 다그칩니다. 밀었냐니까아침부터 혼내는 아비나 혼나는 딸이나 모두 기분이 별로입니다.
  , 창세기 3장에 대한 글을 한편 읽었습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지요. 하나님이 그를 부르시자, 그는 두려워 숨습니다. 그리고는 여자 핑계를 댑니다. 하나님은 하와에게 다가가 물으십니다. ‘너는 어쩌다가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칼럼은 하나님께서라고 묻기보다는어쩌다가라고 물으셨음에 주목합니다. 좋지 않은 일이나 관계의 위기 앞에서라는 질문은 우리로 하여금 변명을 찾게 합니다. 속에 이미 판단은 내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어떻게라는 말에는당신 사정을 들어보자 대화로의 초대가 담겨집니다.
 누가복음 24장에서, 부활의 소식을 믿지 못한 엠마오로 떠나는 제자들의 여행길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동행하십니다.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제자들에게 주께서 하신 말씀은 이렇게 믿음이 없느냐 아니라, ‘무슨 이야기 중입니까?’ 라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리고 한참 동안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십니다.
 지난 9 국민일보는 국민들에게 2017 차기 대통령의 리더십으로 가장 중요한 덕목이 무엇인지를 물었는데, 응답자의 45.8% 소통이라고 답했답니다. 명확한 비전(16.6%) 이나 강한 추진력(13.4%) 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였지요. 좋은 세상을 가져오는 대화와 소통은 누군가를 판단하기 보다사정을 들어봄으로 시작합니다.
 그날 , 딸아이는 아침에 동생을 밀어 넘어뜨린 것이 아니라 안아주다가 함께 넘어진 것이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정식으로 사과했고, 다행히도 마음 넓게 사과를 받아 주었습니다. 먼저 판단하고냐고 묻기 보다, ‘어떻게 하다가라고 물으며 사정을 들어보았더라면 훨씬 좋을 했습니다.   


 율법을 제정하신 분과 심판하시는 분은 분이십니다. 그는 구원하실 수도 있고, 멸망시키실 수도 있습니다. 도대체 그대가 누구이기에 이웃을 심판합니까? (야고보서 4 12절, 새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