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y of Ruth 1/3, "왕이 없었더니" (사사기 21장 25절 – 룻기 1장 5절) - 2015년 2월 1일

함께 예배하는 것이 큰 기쁨 입니다. 목회자 학교 마지막 학기를 위해 LA 에 다녀 왔습니다. 참 따뜻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저기 시골에서 온 목사님들의 페이스북을 보니 다들 집에 간다고 행복하다고 써 놓았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말입니다. 음식이 배부름이 아니고, 집이 가정이 아닌 것처럼, 화려한 LA 가 그 자체로 행복은 아닌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화려한 도시를 뒤로 하고 집에 돌아와서 나에게 맡겨주신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는 것이 참 좋습니다. 교회란 관계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저 서로의 이익을 위해 관계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사랑하고 관심하는 사람들, 진짜로 만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오늘부터 삼주 동안 우리가 읽게 될 룻의 이야기는 바로 어떻게 관계할 것인가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함께 그 아름다운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봅시다.

룻이야기 1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사사들이 나라를 다스리던 그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들었다그 때는 과연 어떤 때 였을까? 사사들의 때였다고 하니까 사사기를 살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사사가 뭐냐면, 선비사 스승사 이렇습니다. 그러니까, 관리들의 이야기, 천주교 성서에서는 판관기라고 하고요, 영어로는 Judges 입니다. 세번에 걸쳐서 이야기하니까 조금 자세히 설명해 볼까요? 처음 교회 오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들어 주세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긴 광야 세월을 마치고, 지금의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지역에 정착을 하지요. 그곳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많은 전쟁들이 있었고,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사울이라는 왕을 세울 때까지 백성들은 사사들. 이 지도자들의 인도를 받게 됩니다. 삼손, 기드온, 여성이었던 드보라 이런 사람들이 사사였습니다. 사사들 중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 뜻을 따르려는 사람들이 줄곧 있었지요. 하지만, 사사기 16장에서 삼손이 죽은 후, 이스라엘은 더 이상의 올바른 지도자를 갖지 못하였습니다. 파란만장한 사사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사사기는, 우리가 오늘 읽은 것처럼 이렇게 끝이 납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음으로,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의 뜻대로 행하였다.”

우리의 삶, 공동체와 개인의 삶을 생각할 때, 이 말이 예사롭게 읽히지 않습니다. 사사기의 후반부는 그 시대의 아픔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사람들은 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들 멋대로, 옳게 생각하는대로 하였습니다. 이 말은, 다른 의도를 갖기도 합니다.. 사사기는 왕정 이후에 기록되거든요. 그러니까, 사울, 다윗, 솔로몬으로 이어지는 왕의 집권적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한 기록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 구절을 대하는 오늘날의 신앙인들에게 이는 훨씬 더 크고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하나님이 우리의 궁극적 통치자임을 말해 줍니다. 행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치적인 왕을 가졌을지라도, 그 왕들이 진정한 왕,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았을 때 이스라엘 민족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았던 다윗, 그의 범죄함 때문에 수만의 백성들이 고통을 당하였죠. 사울, 솔로몬, 또 솔로몬 이후의 수많은 왕들에게도 마찬가지 입니다. 백성들 다스리는 자는 누구인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이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가르침은 신약 성서에도 계속됩니다. 예수님이 그렇게도 가르쳐 주고 싶어 하셨던 하나님의 나라”. 그 나라라는 말은 바로 다스림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살아라.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의미입니다.

사사기의 백성들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자기들의 삶을 다스리시게 하지 않았습니다. 사랑으로, 정의로, 말씀으로 삶의 기준을 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사기 기자는 그들에게 왕이 없었고, 그래서 그들 마음대로 행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지요. 여러분들의 삶은 누가 다스리고 있습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하나님을 충분히 두려워하거나 그 다스림 속에 머무르려고 하나요? 반드시 그러하다고 이야기하기 힘들 겁니다. 험한 소식들이 쏟아지는 뉴스를 들여다보지 않아도, 그저 내 마음만 살펴도 때론 왕이 없는 것처럼, 하나님이 다스리시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때가 있으니까요. 왕이 없는 시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함께 살펴 봅시다.

삼손이 죽은 다음 17장 입니다. 미가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그가 엄마 돈 은 천냥을 훔쳤지요. 어머니는, 그 돈 훔친 사람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 채 그를 저주합니다. 그 저주가 무서웠는지 미가는 자수합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내가 한 저주가 내 아들에게 이르지 않도록 은돈 이백냥을 가지고 은상을 만들어야겠다고 합니다. 레위법에 따르면, 누군가 남의 것을 도둑질 하면, 그것을 변상하고 흠 없는 숫양 한 마리와 함께 제사장이 정하여 주는 속건제물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알만한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나중에 레위 사람 하나를 자기 집의 사적인 제사장으로 둘만큼, 말하자면 종교적인 사람들이예요.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 보다는 그저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자기들 믿고 싶은 대로 믿어 버리는 것이지요. 이미 다른 신상들이 있었던 자기 개인 신당에 그 은상을 둡니다. 그리고, 아들 하나를 제사장으로 앉히지요. 17 6절입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다그리고, 그 다음에 그 산당에 젊은 레위인 제사장을 앉힙니다 .17 13절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미가는, 자기가 이제 레위 사람을 제사장으로 삼았으니, 주께서 틀림없이 자기에게 복을 주실 것이라 생각했다자기들 마음대로 생각합니다.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의 사람을 자기 아랫사람으로 부리며 종교를 사유화합니다. 그러면서도 무엇이 문제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단 지파 사람들이 다른 지역을 정복하기 위해서 미가의 집 앞을 지나게 됩니다. 사사기 18장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보니까 미가의 집에 값 나가는 신상들이 많은 겁니다. 그 값이 어느 정도냐면, 미가가 레위 사람을 고용할 때, 일년에 은돈 열냥을 주겠다고 해요. 그런데, 은상 하나만 해도 은 200냥이니까, 적지 않은 돈이지요. 단 지파 사람들이 그걸 다 빼앗아 갑니다. 그리고, 레위 사람에게도, 이제 이 집 말고, 우리의 제사장이 되어 달라고 말하면서 데려 갑니다. 단지파 자손들은 그 우상들을 가지고 계속해서 섬겼다고 합니다. 왕이 없는 시대에 종교가 타락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사사기 19장에는 더 가슴 아픈 이야기가 있습니다. 18, 19장 모두 이렇게 시작합니다. “왕이 없었고”… 한 레위 남자의 아내가 있었는데, 어느 날 그 여인이 화가 나서 자기 친정 베들레헴으로 떠납니다. 남자는 그녀를 다시 데려오려고 베들레헴에 가지요. 며칠을 설득한 끝에 데려 옵니다. 데려오는 길에 베냐민 지파의 땅인 기브아에서 하루를 묵게 되지요. 그들은 그곳에서 한 노인의 집에 묶게 되는데, 그 날 밤에 그 성의 불량배들이 찾아 옵니다. 그리고, 노인에게 그 손님을 좀 내어 달라고. 자신들이 그와 볼일이 있다고 말합니다. 아마도 그의 재산이 탐났던지 아니면 그의 아내가 탐났던 것이겠지요. 노인은 그러지 말라고 말려 보지만, 결국, 레위 사람은 자신의 아내, 그 친정에서 데려오던 아내를 불량배들에게 내어 줍니다. 새번역 성경 말씀 그대로 읽어 그리겠습니다. 1925절입니다. “그래서 그 레위 사람은 자기 첩을 밖으로 내보내어 그 남자들에게 주었다. 그러자 그 남자들이 밤새도록 그 여자를 윤간하여 욕보인 뒤에, 새벽에 동이 틀 때에야 놓아 주었다. 동이 트자 그 여자는 자기 남편이 있는 그 노인의 집으로 돌아와 문에 쓰러져서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 그 여자의 남편이 아침에 일어나서 그 집의 문을 열고 떠나려고 나와 보니, 자기 첩인 여자가 두 팔로 문지방을 잡고 문간에 쓰러져 있었다. 일어나서 같이 가자고 말하였으니 아무 대답이 없었다

나그네를 환대하는 것은 율법에 규정되어 있는 이스라엘의 법입니다. 베냐민 족속인 기브아 사람들은 그 법을 우습게 여겼습니다. 자기와 한 몸이 된 아내를 끝까지 지켜주어야 하는 것도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지만, 레위 사람에게는 그런 마음이 없었습니다. 자기들의 욕정을 채우고자 하는 썩은 욕망과, 자신의 아내를 지켜내지 않는 무책임한 이기주의가, 친정을 떠난 지 하루 된 여인에게 욕된 죽음을 선사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종교가 흔들림과 동시에 가정이 파괴됩니다.

결국 이 일 때문에 이스라엘엔 전쟁이 생깁니다. 19 29절에 의하면 이 남편이 아내의 시체를 토막내어 이스라엘 각 지파로 보냅니다. 그리고, 이런 일을 당하였으니 베냐민 족속을 멸하자고 하여, 베냐민 지파가 전쟁에서 크게 패하게 됩니다. 사실, 구약성서에는 전쟁 이야기가 참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런 전쟁은 없었습니다. 모든 전쟁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다른 민족간의 싸움이었습니다. 하지만, 왕이 없으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끼리 싸우기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베냐민 자손을 모두 죽이고, 그 성읍을 불사르지요. 민족이 파괴되고 나라가 파괴됩니다. 왕이 없는 시대이기에 그러합니다.

그런데 21 6절에 가면, 이스라엘 족속들이 베냐민 자손에게 측은한 마음을 갖습니다. 그들은 베냐민 지파를 살려 두어야겠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미 자기 딸들은 그들과 결혼시키지 않겠다고 맹세를 했거든요. 그래서 이번에는 길르앗 야베스 사람 중에 남자는 모두 죽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처녀들을, 숨어 살고 있던 베냐민 사람들과 혼인시킵니다. 그래도 여자들이 부족하니까, 실로라는 곳에서 해마다 열리는 축제가 있었는데, 거기서 베냐민 남자들로 하여금 여자들을 마음껏 붙잡아 가게 합니다.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습니다.

  왕이 없던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자신의 생각대로 사람을 죽이고, 힘이 있으면 그 힘으로 자기의 욕망을 채우고, 그 속에서 가정이 파괴되고, 제사장은 자신들의 할 일을 하지 않고, 결국 민족이 분열하여 전쟁하는, 비극의 시대.

그런데, 그 때에 룻의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룻의 이야기도 슬픈 색깔로 시작됩니다. 폭력의 시대이니, 이들의 삶도 평탄할 수만은 없습니다. 하지만 룻과 나오미는 그곳에서 새로운 희망의 이야기를 써내려가기 시작합니다.
크리스찬의 삶은 이러한 폭력의 바다 가운데 희망을 간직하는 것입니다. 험한 세상 속에서 왕의 다스림을 받는, 그 진리대로 살고자 결심한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다시 한번 묻지요. 무엇이 여러분 삶을 다스리고 있습니까? 어떤 문제 앞에서 여러분이 택하는 선택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그곳에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의 마음이기를 소원합니다. 다음 주에 함께 읽을 룻의 이야기가 바로 이 시대, 우리의 이야기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