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nt Sermon Series, "The Blessing of Waiting" 3/3 의도된 초대 (누가복음 2장 8절 - 20절) - 2014년 12월 21일

  함께 예배하는 것이 기쁨입니다. 오늘은 성탄절을 기다리는 대강절의 마지막 주입니다. 어떤 성탄을 기다리고 계십니까? 성탄절에 받을 선물들, 만나게 사람들, 새롭게 만들게 추억들많은 것들이 우리 앞에 있지요. 하지만 계속해서 말씀드리는 것처럼 성탄은 Big Shopping day 또는 Family Gathering day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우리가 처한 자리가, 구원을 필요로하는 상황임을 알게 , 우리는 성탄의 의미,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와 같이 되신 하나님의 오심을 마음으로 기뻐할 있는 것입니다. 희망을 찾아 수백마일을 여행해 동방박사와 같은 마음. 간절함 속에 무릎을 꿇고 왕을 맞이하는 기쁨이 가능합니다.

 오늘은 영광스러운 자리에 초대된 첫번째 사람들. 바로 양을 치는 목자들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성탄의 기쁨을 가장 적절히 표현하는 말은 바로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에게 평화로다라는 천사들의 찬양일 것입니다. 땅에서 말을 처음 들은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어 율법학자도, 이름을 알만한 예수의 제자도 아닌, 들에서 밤새 양을 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마굿간에 처음으로 초대됩니다.

  아이를 나면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장 먼저 초대됩니다. 부모님들이나 가족들 또는 가장 가까운 친구가 풍선과 선물을 들고 분만실로 찾아오기 마련이지요. 와도 되는 사람 혹은 와야 하는 사람. 가장 가까운 친구 혹은 가족이 손님입니다. 아기 예수님의 가정에 가장 가까운 친구, 땅에서의 가족은 바로 목자들입니다.

  목자들은 우리가 성화에서 보는, 깨끗하고 하얀 옷을 입고 귀여운 어린 한마리를 안고 있는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들에서 사는 사람들이었고 초장과 물을 차지하기 위해 투쟁해야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신약학자들은 당시 이스라엘 사회는 거룩의 정치학이 지배하는 사회였다고 말합니다. 로마에게 이스라엘이 지배 당하는 것이 자신들의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구약성서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인과응보적인 세계관입니다. 그런데, 죄를 자신의 것이라고 하면 좋은데, 인간이란 본래 죄를 다른 사람에게 돌리려는 나쁜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성경을 이용하여, 이스라엘의 어려움이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 창녀, 세리, 장애인과 같은 사람들의 탓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거룩하지 않은 자들은 철저하게 소외되고 누명을 쓰며 사회를 유지하는 희생양이 됩니다.

  부류가 바로 목자들입니다. 그들은 들에서 잠을 자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안식일에도 누군가는 양을 돌보아야 했기에 안식일은 율법의 방식대로 지킬 없었습니다. 음식을 먹으며 손을 씻을 수도 없었고, 유목을 하다 보면 며칠이고 밖에 나가 있어야 했기에 성전을 때에 찾을 수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대부분은 자기 땅이 없이 곳을 돌아다니며 양들을 먹여야 했기에, 초원과 물을 확보해야 하는 그들의 삶은 전쟁터였습니다. 중에, 갑자기 다가온 천사는 그들에게 그리 반가운 대상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장 처음으로 초대됩니다

천사는, 그들에게 나타납니다. 의도적으로 그들을 초대하였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것이 복음의 위대함이기 때문입니다.

 동방박사들처럼 변변한 선물 하나도 드릴 없었던 그들. 하지만 성경은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첫번째 성탄이란 본래 이런 사람들의 잔치였습니다. 첫번째 성탄의 이야기는 나사렛이라는 동네로부터 시작됩니다. 지금이야 예수님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지만, 당시에는 누구도 알지 못하는 그냥 작은 시골 동네입니다. 탈무드에는 이스라엘의 63 도시 이름이 나오는데, 나사렛 없습니다. 1세기 역사가 요세푸스도 자신의 글에서 45개의 이스라엘 도시를 언급하는데, 나사렛은 없습니다. 위대한 성탄의 이야기는 거기, 나사렛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마리아는 어떻습니까? 성경은 그녀에 대해 요셉과약혼한 여자라고만 설명합니다.( 1 27) 어느 가문 사람인지, 행실이 어떠했는지 우리는 그저 짐작할 뿐입니다. 누가복음 1장의 엘레사벳에 대한 소개를 보면 대비가 뚜렷합니다. (엘리사벳은 아론의 자손이고, 율법을 지키는 없는 사람이라고 소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성탄의 중심 인물은 엘리사벳이 아니라 마리아 입니다. 여관의 스위트룸이 아닌 거라지, 왕이나 총리의 방문이 아닌 이름을 없는 동쪽 나라 사람들의 예고 없는 방문. 그리고 이집트로의 도피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는 이렇게 이름 없는 도시에서 이름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시작됩니다. 오늘 설교의 결론부터 말씀드릴까요? 만약 당신이 이름 없는 사람이라고 느껴지신다면, 당신의 삶이 초라하고 너무 보잘 없게 생각된다면, 기뻐하십시오. 하나님이 일하시기 가장 좋은 조건을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적어도 크리스마스 스토리를 보면 그렇습니다. 만약 당신이 힘도 있고, 도시 출신의 능력자라면 두려워하십시오. 어쩌면, 깨어 있지 않으면, 성탄의 이야기로부터 소외될 있습니다. 낮은 사람들의 틈에 몸과 마음을 두셔야 합니다.  
   누가 성탄의 기쁨에 초대됩니까? 성탄의 이야기는 궁전이 아니라 마굿간, 요람이 아니라 밥통, 대한항공1등석 객실이 아니라 오래 , 아니 추운 날의 버스 정류장에서 시작됩니다. 거기엔 작은 사람들만 초대 됩니다. 하나님의 작은 사람들에 대한 우선하는 관심 마리아의 노래를 들어보면 분명해 집니다. 누가복음  1 45, 힘센 분이 나에게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름은 거룩하고, 46, 그의 자비하심은, 그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대대로 있을 것입니다. 51 그는 팔로 권능을 행하시고 마음이 교만한 사람들을 흩으셨으니, 52  제왕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사람을 높이셨습니다. 53 주린 사람들을 좋은 것으로 배부르게 하시고, 부한 사람들을 빈손으로 떠나보내셨습니다 54  그는 자비를 기억하셔서, 자기의 이스라엘을 도우셨습니다.

   천사들의 소식을 듣고 싶다면, 영광스러운 자리에 초대받고 싶다면, 목자들과 함께 있어야 합니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라는 아름다운 천사들의 노래를 들으려면 들에, 밤에, 냄새나는 그들과 함께 있어야 합니다. 사실, 이런 설교를 하기가 두렵습니다. 왜냐하면 또한 그들과 온전히 함께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따뜻한 안에서 몸을 씻고 깨끗한 옷을 입고 잠을 잡니다. 아직 그들 속으로 온전히 뛰어 들기에는 믿음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조금씩 거리의 사람들, 밤에 일하는 사람들과 삶을 나누려고 노력합니다. 그들의 좋은 친구가 되면, 예수님의 좋은 친구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내내 성탄 카드를 썻습니다. 카드를 쓰다보니 교회 목사님들, 우리 교회를 도와 주시는 분들 에게 먼저 제가 카드를 쓰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분들은 말고도 다른 카드를 많이 받으실텐데 생각하면서, 이렇게 했습니다. 분에게 한통, 작은 분에게 한통. 그러니까 보이고 싶은 분에게 카드를 한통 후에는 나에게 아무 유익이 없어 보이는 사람에게도 한통의 카드를 보냈습니다. 아주 작은 일이었지만 목자들과 친구가 되는 한가지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면 소식이 가장 먼저 어디에 전해 지겠나생각해 본다면 우리의 관심이 달라질 것입니다. 아주 많은 방법이 있습니다. 자녀의 선물을 사면서 똑같은 선물을 도네이션 할 수도 있고, 컴퓨터나 핸드폰을 열면 몇 분 안에 그런 일을 해 주는 사람들에게 돈을 보낼 수 있습니다. 지금 실천할 수 있는 수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소외되고 차별 받는 이들과 함께 삶을 나눌 때, 우리는 그 초대에 참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지 전에 가지만 생각해 볼까요? 목자였을까요? 세리도 있고, 병자도 있고 거룩하지 못하다고 여겨지는 다른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목자였을까 궁금하지 않으세요?
   목자가 하는 일은 예수님으로 땅에 오신 하나님의 일하심과 매우 닮아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여러차례 자신을 목자다 하고 말씀해 주십니다. 이스라엘의 선왕 다윗도 목자였고, 출애굽을 이끌었던 모세도 40 동안 양을 치는 사람이었습니다. 일을 통해 양떼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배우고 닮아갔던 것이지요.  
우리 모두가 아는 시편 23편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주님은 나를 기르시는 목자다. 그래서 내가 부족합이 없다. 사망의 골짜기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의 지팡이가 나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양치기의 힘은, ‘함께 있는 입니다. 하나님이 낙농업자나 목장주가 아니고 우리의 양치기이신 이유는 그가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사망의 골짜기에서도 바로 옆에 그의 지팡이가 있기 때문에 무섭지 않고, 목이 마를 때도 걱정이 없는 것은, 그가 목마름을 아시고 함께 물가로 내려가 주시기 때문입니다. 양치기는 언제나 양과 함께 있습니다. 우리 때문에 고약한 냄새가 베고, 안식일의 율법도 어겨야하고 사람들의 수군거림도 들어야 했지만 그는 결코 우리를 떠날 없습니다. 양치기 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임마누엘의 하나님의 경륜과 양치기의 삶이 닮있습니다. 그러니 주께서 그들을 좋은 친구로 제일 먼저 초대하지 않으셨을까요?  
   
결국 양치기는 가장 아름다운 생파에 초대된 최고의 손님이 된다.

추운 밤을 들에서 보내고 있는 양치기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친구가 되며 기쁨의 잔치에 가장 먼저 초대됩시다. 그곳에서 우리의 참된 목자되신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우리을 반겨 주실 것입니다. Merry Christm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