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nt Sermon Series, "The Blessing of Waiting" 2/3 - 희망의 여정 (마태복음 2장 1절 - 11절) 2014년 12월 14일

함께 예배하는 일이 기쁨입니다. 오늘은 대강절 세번째 주일입니다. 교회의 전통은 오늘 그리스도의 초를 둘러 싸고 있는 개의 초들 중에 네번째 초를 밝히면서, 기쁨을 이야기하지요. (첫번째 초는 희망을, 두번째는 평화를 그리고 네번째 초는 사랑을 상징합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도 박사들이 별을 보고 크게 기뻐하였다라고 말해 줍니다. 성탄을 기다리는 여러분의 마음이 요즘 어떠십니까? 기쁘십니까? 바라는 것은 함께 드리는 예배가 우리 마음에 원래 있는 기쁨을 회복시켜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머리 속에 가지고 있는 성탄절 마구간의 풍경은 사실, 하나의 복음서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그림이 아닙니다. 동방에서 박사들의 이야기는 마태복음에만 나오고요, 목자들 그리고 지난 주에 살펴 안나와 시므온의 이야기는 누가복음에만 나옵니다. 그런가하면 마가는 세례요한의 선포로부터 복음서를 시작하고, 요한복음은 많이 다릅니다. 우리는 이렇게 다양한 관점으로부터, 다양한 제자 혹은 신앙 공동체의 증언을 통해 더욱 입체적이고 온전한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변에 나와 다른 관점을 가진 신앙인이 있다는 것은 우리 공동체의 예수님 이해를 깊게 하는 자산이고 힘이 됩니다.그것이 하나의 하나님, 하나의 믿음, 생명과 평화의 하나님에 관한 것인 , 우리의 다름은 자체로 축복이 됩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가 조금씩 다른 것처럼 예수님의 부활에 관한 증언들도 조금씩 강조점이 다릅니다. 사도행전의 저자이기도 누가는 엠마오로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적어 놓았고요, 마태는 군인들이 부활의 소식을 감추려 했다는 보도를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도마 이야기나, 디베리아 바닷가에서 베드로가 회개하는 장면을 자세히 전해 줍니다. 그런데, 공통되는 점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8 10. “ 여자들이 무서움과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누가복음 24 52. “저희가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요한복음도 화개하는 베드로의 기쁨을 마지막 장에서 이야기해 줍니다. 부활을 만난 이들은 모두 기뻐하였다는 것이지요.
모든 주일은 작은 부활절입니다. 그러니 우리 오늘 예배를 통해 기쁨을 회복합시다. 두려움, 슬픔, 무기력함, 분주함, 걱정으로 가득한 마음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남으로 기쁨하길 소원합니다.

그럼, 이제 이들은 무엇 때문에 그리도 기뻐하였나, 동방에서 박사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지요. 우선, 이사람들이 누구였을까요?    어떤 이들은 그들이 왕들이었다고 합니다. 시편 72 11편에 이렇게 되어 있거든요. “만왕이 앞에 부복하며 열방이 그를 섬기리로다하지만 마태복음만 보아서는 그들이 왕이었는지 턱이 없습니다. 아닌 같습니다. 이들을 가르키는 magoi 라는 말은 ( 말에서 magician 오는데) 고대에 별을 보며 미래를 예측하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특히 페르시아의 종교였던 조로아스터 교의 사제들을 지칭하지요. 그래서 많은 신약학자들은 사람들이 지금의 이란 , 페르시아로부터 왔을 것이라 추정합니다. 말이 맞다면, 이들은 적어도 1,000 마일 이상을 여행한 사람들입니다. 별을 보고, 왕을 찾아서 말입니다. 여기서 뉴욕까지 950 mile 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이 3명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명이서 그런 여행 못합니다. 게다가 그들이 가지고 비싼 선물이 있었는데, 그것들이 여행을 위험하게 했을 것입니다.

여기 왕을 찾아 여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평생의 삶을 드려 순종할 대상 앞에 무릎 꿇기 위해 목숨을 걸고 길고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진리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별빛을 허락하십니다. 때론 불빛이 멀고 희미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찾고자 언제나 거기엔 우리의 길잡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별빛을 따라 희망의 여행을 시작합니다. 인생이 여행인 이유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여행 길에 왕을 만나게 됩니다. 왕은 왕궁에 살고요, 왕은 화려할 전혀 없는 민가에 살고 있습니다. 성경도 그들이 집에 들어갔다라고 보도합니다. 박사들이 도착한 시점은 아기 예수님이 태어난 직후가 아닐 것입니다. 왕은 힘이 성인이고, 왕은 아직 엄마 품에 안겨 있는 아기 입니다. 그런데 왕은 박사들의 방문에 두려워 떨고 있고 다른 왕은 그저 편히 울거나 웃고 있었을 것입니다.

진리를 찾는 여행자들은 종종 그들만의 왕을 만나게 됩니다. 왕은 힘있고 화려해 보입니다. 그에게 절하면 당장 명예와 부를 얻게 합니다. 그런가하면 다른 왕은 쉽게 찾을 없습니다. 때론 밤이 되야 빛나는 별을 쫓아 애써 찾고 탐문해야 합니다. 무엇이 참된 진리일까 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선택은 언제나 여행자들의 몫입니다.
헤롯 the Great 나름 안됐습니다. 유대의 순수 혈통이 아닌 이두메인으로 통치자의 자리에 앉아서 로마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분봉왕의 신세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기가 가진 것을 지키고 키워가고자 폭력을 행사하고 경쟁자들을 죽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결국 예수님이 태어난 지역, 베들레헴의 영아들을 학살하는 범죄를 자행합니다. 복된 탄생이 세상 권력의 폭력성을 까발리는 장면입니다.

천마일이 넘는 여정 끝에 이들은 왕을 차례로 만납니다. 동화작가 이현주 목사님의 표현대로 한다면 살려고 남을 죽이는 왕과, 살리려고 나를 죽이는 왕이 그들 앞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앞에 절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떤 앞에 여러분의 선물을 내어 놓으시겠습니까?  여러분이라면 어떤 분에게 여러분의 인생을 거시겠습니까?

 헤롯을 만나고, 그와 한참을 대화하고 후에, 그들이 궁전을 나왔을 , 진리의 별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성경은 말해 줍니다. “그들이 별을 보고 무척이나 크게 기뻐하였다.” 오늘은 기쁨의 주일이라고 말씀드렸지요. 진정한 왕에게로 인도하는 별빛이 여러분들을 기쁘게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오직 만이 우리에게 기쁨을 허락하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