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보 칼럼 : 첫번째 성만찬을 준비하며 - 2014년 11월 9일

  아주 어릴 때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저는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가끔 아버지가 해 주셨던 이야기로 그분의 삶을 상상해 볼 뿐이지요. 추도예배나 성묘 가서 우리 할머니 이야기를 듣지만, 아버지가 할머니 이야기를 더 많이 해 주시는 때가 있습니다. 바로 ‘게찜’을 먹을 때입니다. 온 가족이 둘러 앉아 게를 쪄 먹을 때면 아버지는 어김없이 ‘니네 할머니 이거 진짜 좋아하셨는데…’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고는 할머니의 신앙과 삶에 대해 자식들에게 말씀해 주셨지요. “게찜”은 아버지에게, ‘당신 어머니’를 기억하게 하는, 음식 이상의 어떤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아마 여러분에게도 하나씩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리운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는 음식 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도 예수님을 기억하게 하는 음식이 있습니다. 바로 떡과 포도주 인데요, 주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이 잔과 떡을 나눔으로 나를 기억하라’ 말씀하셨습니다. (고전 11:23) 그 아름다운 전통이 2000년을 넘도록 이어져 오늘, 우리 교회는 첫 성만찬을 나누게 됩니다. 우리가 속한 교회의 가르침은, 성찬의 자리에서 떡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실제적 변화(substantial change)를 겪는다고 믿지 않지 않습니다. (교회사 속에서 꽤 오랫동안 이런 믿음이 고백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 빵과 포도주는 “주님을 기념하는 상징” 이상의 어떤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것은 ‘우리 집안의 게찜’ 보다 훨씬 큰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우리 할머니는 지금 하늘에 계시지만, 우리가 이것들로 기념하는 예수님은 “지금 우리와 여기에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찬을 통해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기억할 때 주님은 우리 안에 임재하시고 기꺼이 마음을 연 우리와 하나가 되어 주실 것입니다.

감사절에 빵과 포도주를 떼며 우리가 하는 일은 ‘기억’하는 일입니다. “기억”은 신앙생활에 있어 참으로 소중한 일입니다. 기억이 회개도 없고, 기억이 없으면 감사도 없으니까요. 추수감사절에, 바쁘게 살아온 걸음을 잠시 멈추고, 우리에게 부어주신 은혜를 함께 기억합시다. 그 각자의 기억이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에 대한 모두의 영원한 기억 안에서 하나가 될 것입니다. 게찜이 제 아버지에게 그러하였듯, 성만찬을 앞에 둔 우리는 예수님 기억으로 오늘 행복할 것입니다.

또 여호와의 일들을 기억하며 주께서 옛적에 행하신 기이한 일을 기억하리이다 (시편 77편 11절)

평화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