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ies “주의 기도 위험한 그리고 위대한” 2/3 위험한 부탁 (마태복음 6장 9절 – 15절) 2014년 10월 19일


함께 예배하는 것이 기쁨입니다. 지난 주부터 우리는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말씀드렸듯이, 예수님의 기도는 우리로 따지면 삼국시대에 가르쳐 것입니다. 아주 오래된 가르침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기도가 여전히 우리의 영혼을 새롭게 하고 우리를 참되고 깊은 기도의 세계로 이끈다고 믿습니다. 온고함 속에 지신하는 일이 우리 안에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지난 주에는 단어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 라는 말입니다. 그는 하늘에 계십니다. 잠언 5장의 말씀처럼 우리는 땅에 있고 하나님은 하늘에 계십니다. 하늘은 어디에도 있고,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언제나 분과  함께 하듯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전통 가운데 신독이라는 덕목이 있지요. 홀로 있을 때에도 마치 누가 있는듯이 삼가하라누가 있단 말인가요? 우리 조상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알기도 전에, 성경의 가르침을 알기도 전에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여러분들은 지난 주간 신독하며 사셨는지 묻고 싶네요.

그런데, 분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시다고 해도 두려워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분은 우리의 잘못을 체크하는 감시자라기 보다는 사랑으로 바라보고 있는 존재, 바로 아빠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빠라는 사실은 놀라운 선언입니다. 분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의 변화입니다. 분께서 아빠임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걱정이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 한가지 잊지 않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분은우리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나밖에 없는 것처럼 나를 사랑하시지만 또한 옆에 있는 사람, 그리고 세상 모든 존재를 사랑하시는 우리의 아버지 입니다. 그분이 우리의 아버지 되시기에 우리는 서로에게 형제가 되고 자매가 됩니다. 마음을 알기 때문에, 분에게 돌아와야 하는 사람들에게 분을 전할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에 대해 알려주신 후에, 예수님은 먼저 분의 이름이 거룩하여 지기를 원한다는 기도를 드리십니다. 입만 열면 우리의 요구를 쏟아내기에 바쁜 우리의 기도와는 달리, 먼저 예수님은 아버지의 이름을 높여 드립니다. 그렇게 , 아버지의 이름이 우리 안에 충분히 높여질 , 우리는 우리의 문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되고 무게로부터 자유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통한 우리의 바램은 아버지의 이름이 세상 곳곳에서 거룩하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지난 주간의 삶을 돌아 보면, 아버지가 때문에 자랑스러워 하실만한 일이 있었습니까? 잠언 25장에, 충성하는 자는 그를 보낸 주인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냉수 같다고 합니다. 세상을 돌아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소식들만 들려옵니다. 아파트의 경비원은 인간적인 대접을 받지 못해서 자살을 시도하고요, 경기도에서는 무고한 사람들 수십명이 죽었습니다. 미국이 주도한 시리아 공습에서 민간인 10명이 죽었다고 보도되고, 홍콩에서는 250명이 다쳤다고 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인간이 아니시기에 우리와 똑같이 마음 아파하시지는 않겠지만, 여전히 무척이나 안타깝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런데, 우리 때문에  시원한 냉수 한잔 하시는 같은 기쁨을 느끼셨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버지의 이름이 세상 모든 것에서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해달라는 기도는 자연스레 분의 나라가 임하고 뜻이 가운데 이루어지게 달라는 기도와 연결됩니다. 아버지의 , 우리를 향한 아버지의 마음은 사랑이고, 행복이고 생명과 평화이지요. 생명과 평화가 도처에서 살아나는 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아버지의 나라는 바실레이아 데오 라는 말입니다.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개념인데요, 많은 신약 학자들이 예수님이 땅에서 가르쳐 주신 모든 가르침의 핵심은 바로 하나님 나라였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나라는 영토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치적인 개념이지요. 공간적으로 나라를 세우려 했던 사람들은 모두 안타까운 결과만을 남겼습니다. 그러니까 뜻을 명확히 하려면 하나님의 다스림 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습니다. 나라가 임한다 그것은요, 아버지 우리를 다스려 주옵소서아버지 세상 모든 민족이 아버지의 다스림 속에, 아버지의 통치 속에 살아가게 주십시오 라는 기도입니다. 무엇보다 삶을 다스려 주옵소서. 기도 속에서 우리는 무엇이 우리 삶을 다스리고 있는지, 무엇이 우리의 생각가 행위를 이끌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성공을 향한 욕심, 소유를 향한 전력 질주 혹은 보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받기 위한 자기애가 우리의 삶을 다스리고 있다면 기도를 통하여 다시 생명과 평화의 하나님이 다스림의 자리에 앉으시도록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때에만, 우리를 만드시고 거두실 분이 지금의 삶을 이끄실 때만 우리는 참되게 살아갈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아버지의 아버지 되심을 기도하고 후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한 기도를 드립니다.
첫번째는 양식을 위한 기도입니다. 물어보지요. 집에 하루치의 양식이 없는 있으십니까 (우리 집에 오세요) 냉장고가 개발되면서 사람들의 탐욕은 늘어났지만 그것이 없더라도 우리는 대부분 하루 이상의 양식을 비축하고 살아갑니다. 그럼 기도는 무엇인가? 바로, 매일 매일의 양식이 하나님께로부터 것임을 고백하고, 인식하고 - “까먹지 말고”, 감사하며 살아가리라는 고백입니다. 일용할 양식으로 우리를 살아있게 하시는 분이 분이 하나님이심을 마음에 새기라는 것입니다. 배가 고프고, 어려운 날이 오기 전에, 때가 되서야 뒤늦게 깨닫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의 삶과 식사 속에서, 결국 땅의 모든 것을 있게 하신 햇빛과 비의 주인, 땅과 공기의 창조자를 기억하자는 것입니다. 매일 매일 식사를 하며 감격과 감사를 회복하는 우리가 됩시다. 출애굽의 시기 동안 매일 매일 만나를 신비로 경험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날 없습니다. 그런데, 만나가 당연한 것이 되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잊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도 단어 하나가 있습니다. 기도 속에도우리라는 단어는 의도적으로 사용됩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라예수님은 가르치십니다.  북반구의 음식물 쓰레기만으로 남반구의 사람들이 배불리 먹을 있는 정말 이상한 세상을 우리는 살아갑니다. 일용할 양식. 우리에겐 당연한데, 누군가에겐 정말 절실한 기도가 되기도 합니다. 기도 속에 땅의 뒤틀어진 모습을 다시 옳게 만들려는 거룩한 욕심이 담겨나길 소원합니다. 이렇게 매주 기도하는 우리를 통해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이 제공되길 바랍니다. 우리 12월에 no more malaria 김밥 장사 하려고 합니다. 좋은 훈련과 시도가 줄로 믿습니다.

 마태복음에 의하면 주의 기도를 가르치신 예수님은 중에 하나에 대해서만 부연 설명을 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용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4.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실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버지도 너희를 용서하지 않으신다어떻게 보면 우리가 용서 받는 조건이,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용서란 어떤 조건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너무 용서이기에 조건이 있을 수도 없고, 조건을 채운다고 해도 당연히 하나님께 용서하시오 하고 당당히 요구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조건처럼, 아니 조금은 협박처럼 용서해야만 용서 받을 있다라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만큼 용서가 중요하기 때문 아닐까요? 아버지의 용서는 조건이 없는 것이지만,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계시기 때문 아닐까요? 용서는 그런 이미에서 명령입니다. 정말 용서하기 어려운 사람들, 용서하기 힘든 상황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을 하기가 미안하고 두렵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용서 하셔야 합니다. 결코 용서할 없다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그래도 당신이 사람을 용서하시기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용서 없이 우선, 당신의 삶이 행복할 없기 때문입니다. 용서한 행복과 자유를 향한 명령입니다. 누군가를 향한 나쁜 마음을 여전히 품고 계십니까?  간이 필요할 때가 있지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 수록 마음은 풀어져야 합니다. 기도 가운데 용서할 없는 마음까지 하나님께 드려봅시다. 내일은 용서하게 달라고 기도합시다.

그리고 오늘 마지막으로 생각해 기도는 바로 시험과 악한 자에게서의 구원입니다. 얼마나 많이 시험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습니까? 크던 작던 우리는 항상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악한 세력을 마주하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자주 그들에게 우리 마음을 내어 줍니다. 저는 그렇습니다. 시험 앞에서 약한 존재임을 고백합니다. 그러기에 말씀의 도움이 필요하고 성령님의 동행하심이 필요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목사님의 표현으로 우리는 마치 장의 종이와 같아서 쉽사리 찢어지고 구겨집니다. 그런데, 종이가 반석에 달라 붙으면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반석에 달라 붙으면 결코 쉽사리 찢어지지 않게 됩니다. 영어 단어 religion 바로 이러한 표현인데, 이는 다시 묶다 라는 라틴어에서 유리한 말입니다. 근본적인 것에, 어떤 위대한 것에 우리 자신을 다시 묶을 때에만 우리는 시험과 악한자의 도전에서 바로 있게 됩니다. 그러기에 기도 속에 깨어 있어서 하나님에게 우리를 묶어 두어야 합니다.

이렇게 세가지 기도를 우리를 위해 드렸습니다. 우리가 안에 있을 구하는 것들은 반드시 들어준다고 하셨는데, 예수님의 방식대로 기도하면 들어주시겠지요. 우리가 기도할 때에 일용할 양식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양식 대하며 감사와 만족을 느낄 것입니다. 용서할 있는 힘을 주실 것입니다. 불가능할 같았지만 어느 순간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우리를 발견하게 것입니다. 그리고 시험과 악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게 것입니다. 여전히 힘들어도 승리의 기쁨을 누리며 이야기하며 것입니다.

우리 이렇게 기도하며 이렇게 살아갑시다. 위험하고 어려운 기도지만, 좁은 길이 생명의 길입니다. 평화와 생명의 길입니다.

일용할 양식으로 만족하셨던 예수님, 우리 모두의 배를 불리고자 스스로 생명의 빵이 되신 예수님,자신의 원수들도 사랑하셨던 용서의 예수님 용서하셨던 예수님, 그리고 어떤 시험과 악의 유혹 속에서도 결코 중심을 잃지 않으셨던 예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평화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