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단 없는 설교 하나. 8월 10일 - 그가, ‘나다’ 라고 말했을 때… (마태복음 14장 22-27절)


저에겐 당분간 설교할 강단이 없습니다. 지난 6월말에 섬기던 교회에서 마지막 예배를 드리고, 이곳 메디슨에서 8월 마지막 주에 다시 예배를 시작할 때까지 저에게는 허락된 강단이 없습니다. 물론 가족 예배때마다 설교할 기회가 있지만, 세 살 그리고 한 살인 딸 아들은 제게 마음껏 설교할 시간을 주지 않지요. 설교가 없으니 시간이 많이 나긴 하는데^^ 그렇게 한 달이 지나니 마음이 많이 허전하더라고요. , 하나님 이야기 하고 싶다그런 생각을 하다가 교회력을 따라 오늘(8 10)에 해당하는 복음서 본문을 펴고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듣는 사람 없어도, 정해진 예배 공간이 아직 없어도, 하나님 이야기는 멈출 수 없어서 말입니다. 오늘의 설교는 누군지 모를 당신에게, 새로운 교회를 준비하는 한 이민교회의 젊은 목사가 전하는 예수님 이야기입니다.

교회력을 따라 오늘의 복음서 본문은, 예수님이 소년의 작은 도시락으로 많은 사람들을 먹이신 바로 그 다음 이야기입니다. (우리 교회는 특별한 시리즈 설교가 없는 경우, 교회력을 따라 함께 성경을 읽을 것입니다.) 배고픈 사람들을 그냥 돌려 보낼 수 없었던 예수님의 사랑, 그리고 그 분의 손에 들려만 진다면 내가 가진 것으로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소년의 헌신이 멋진 만남으로 인해 남자만 5,000명도 넘는 사람들이 배부른 식사를 했습니다. 그러자, 당연하게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다시 보기 시작했지요. 요한복음에 따르면 그 일이 유월절 가까이에 일어났는데, 이 유월절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많이 기억하는 것이 만나 사건이거든요. 그러니 기적을 통해 주린 배를 채워주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위대한 민족이 지도자 '모세'의 모습이 오버랩 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 자리에서 자신들의 왕으로 세우기 원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을 먼저 배에 태워 보내시고, 무리를 흩으십니다. (22날은 저물었고, 제자들은 지금 배를 타고 호수 반대쪽 가버나움으로 돌아가고 있고, 예수님은 기도하시며 아직 산 속에 계십니다.

얼마를 진행해 나갔는데,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고 바람이 거세지면서 배가 풍랑에 휩싸입니다. 갈릴리 호수는 북쪽에 높은 산이 있고 호수 남쪽으로 급격하게 내리 깎인 지형이기 때문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돌풍에 휩싸일 때가 많았다고 합니다. 제자들은 열심히 노를 저었지만, 십여리. 4킬로미터 정도밖에 가지 못했습니다. 어두운 밤에 만난 폭풍 앞에서 제자들은 두려움에 압도되었습니다. 25절은 이른 새벽에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그러니 밤새 풍랑과 싸우고 있었던 게지요. 죽음의 공포와 싸우며 밤새 지칠대로 지쳐 있는 제자들.

그 때,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어 그들에게 다가 오십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두려움에 질린 제자들에게 호수 위를 걸어오시는 그분이 어떻게 보였을까요? 대낮에 제 정신으로 그 광경을 보았다 해도 제대로 판단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 밤중에 이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것도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쳐있고 두려움에 짓눌려 죽음을 두려워하던 상황에서 그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러니 그들의 눈에 예수님이 예수님처럼 보였겠습니까? 반대로, 죽음의 사자가 음부의 문을 열고 자기들을 잡으러 오는 줄로 알았겠지요. 그런데 죽음의 사자처럼 보이던 그 사람이 말합니다. “안심하여라. 나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물 위를 걷는 예수님의 기적도 신기하고, 결국 예수님이 배 위에 오르셨을 때 잠잠해 진 파도 이야기도 참 감동적입니다. 예수님을 향해 물 위를 걸었던 베드로의 행동 또한 깊은 묵상꺼리 입니다. 그런데, 저는 다른 어떤 것 보다 이 짧은 말에 마음이 쏠립니다

나다

왜냐하면, 이 나다라는 말이 의미를 갖을 수 없을 때 그 분의 놀라운 능력. 혹은 베드로를 걷게 하시는 믿음으로의 초대 또한 의미를 갖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폭풍 속에서, 죽음의 공포 앞에서 그러니까 절박한 인간의 실존적 한계 앞에서 예수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안심하여라

아마 지금 이야기 드리는 이 두가지 중 한 경우의 경험을 가지고 있으실 겁니다. 전화를 받았는데, 요즘은 번호 확인이 되지만, 예전에 말입니다. 누군가 알지 못하는 사람이 난데… 라고 이야기를 해서 당황하셨든지, 아니면 여러분들이 전화를 해서 난데 라고 말했는데, 상대편이 누구시죠? 라고 말해서 뻘쭘해 하시는 상황 말입니다. 사실, 난데요… 혹은 우리 동네에서는 나여하는데, 이 말은 굉장히 대담한 표현이기도 합니다. 서로의 존재가 매 순간 인식되고 있을 때, 그러니까 어느 순간이든 나라는 사람이 저 사람의 마음 속에 있다고 생각 될 때 쓸 수 있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곧 서로의 관계를 보여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집트에서 노예 살이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라고 부르셨을 때, 모세가 하나님께 청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어떤 하나님이 너를 보내셨느냐?”고 물으면 대답해야 하니, 하나님의 이름을 알려 달라고 말입니다. 출애굽기 3 1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을 말씀하지 않으시고는나는 나다라고 답하십니다. 개역성경에는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니라고 번역되었는데, 표준새번역에서는 나는 나다라고 표현입니다. 헬라 사람들도 히브리 성경을 번역할 때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그래서 헬라말을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에고 에이미나다!”라는 말은 하나님이 즐겨 사용하시는 어투로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이르면, 이미나다라는 말은 하나님의 이름처럼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께서나다. 두려워하지 말아라고 말씀하셨을 때, 제자들은 친구처럼 자신들을 아끼시던 사람 예수의 음성을 들었을 뿐 아니라, 그분을 통해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음성도 들었을 것입니다. “나다!” 에고 에이미 라는 이 말 속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이 말처럼 힘이 되는 말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주님은, 풍랑 가운데 우리를 찾아와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나여걱정하지 말어그 말씀이 들리십니까? 베드로는 뱃사람이지요.  제자 중에 많은 수가 어부출신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이 생겨납니다. 나뭇잎 같은 조각배. 일엽편주 같은 것이 우리네 삶이지요. 특히나 타향살이엔 풍랑이 있기 마련이지요. 그 때 주님은 그 풍랑을 가로질러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그리고 (제 사투리를 용서 하십시오) 나여. 걱정 말어.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냥 말만 그렇게 위로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왜냐하면 그는 바다를 잠잠케 하시는 분이시기에 그렇습니다. 그에게 다른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다" 라는 말을 듣고, 그 분이 누구신지를 알 때 우리의 문제는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과 평행이 되는 요한복음 6장에는 마지막에 흥미로운 대목이 나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보고는 배 안으로 모셔 들였습니다. 21절 마지막에 보니,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제자들이 풍랑을 헤치며 밤 새 도록 저어간 거리가, 19절에 보면, 십 여 리 정도라고 했습니다. 바다라고도 불리웠던 갈릴리 호수의 동서 넓이가 가장 넓은 곳으로 따져 11킬로미터 정도 되었으니, 밤새도록 노를 저었지만 호수의 반도 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배 안에 들어오시자 배는 신기하게도목적지에 도달했다는 것입니다. 찬송가 373, 고요한 바다로 라는 곡의 2절은 이렇습니다.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 인하여 더 빨리 갑니다."
풍랑을 만난 어부들처럼, 가장 익숙한 공간에서, 가장 잘 해낼 것 같은 일들 속에서 어려움을 당할 때가 있지요. 기억하십시오. 우리에게는 나다하면 단박에 알 수 있는 바로 그 분이 계십니다. 그가 내 배에 오르시면 이 풍랑이, 가야 할 곳에 더 빨리 가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고, 그가 오라 하시면 우리도 베드로처럼 풍랑 가운데로 뚜벅 뚜벅 걸어갈 수 있습니다. 때론 그 길에 믿음이 적어 넘어질 지라도 그는 우리를 붙잡아 주실 것입니다.
눈을 드시기 바랍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 그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나다이 참 듣기 좋은 말이 여러분들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평화

함께 이야기 해 보고 싶은 것들
1.     예수님이 배로 걸어 오실 때, 베드로는 나도 주님처럼 물 위를 걷게 해 달라고 부탁하고, 그렇게 합니다. 중간에 빠질 뻔하기도 하지만요. 베드로는 왜 그랬을까요?
2.     당신이 전화기로 나다라고 말하면 금방 알아들을 친구가 있으십니까? 혹은 당신 전화기에 난데라고 하면 누군지 알만한 사람이 있나요? 그와는 어떤 관계이십니까?

3.     지난 한 주 당신의 배에 분 바람은 어땠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