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읽기 좋은 여름 마지막, '바로 지금 깨어 있기' (13장 32절 - 37절)

함께 에배함이 기쁨입니다. 저는 지난 주에 이사를 했습니다. 7 미국에 때는 24kg 짜리 가방 네개를 가지고 왔는데, 이번 이사에는 커다란 트럭이 모자랐습니다. 이걸 죽기전에 사용할 있을까 하는 것들도 있었습니다. 어짜피 결국엔 하늘 나라에 가지고 가지 못할 것인데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지구별 여행이 금방 끝날 있다는 생각을 본격적으로 것은 2000년이었습니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앞에두고 사람들은 수백년전의 인물, 노스트라다무스를 생각해 냈습니다. 그리고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고 걱정했습니다. 일이 모두 지나갔지만, 아직 지구가 끝날 것이라는 염려 때문에 일상을 제대로 살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사실, 그럴 만도 합니다. 주위를 조금만 둘러 보면 말세의 징조를 쉽게 발견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지구를 번이나 날려 버릴만한 핵을 가지고 있고, 지난 주에도 방글라데시와  터키에, 이성을 잃은 사람들의 테러 소식을 들었습니다. 세상 끝의 징조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은 일들입니다.

오늘 말씀,  마가복음 13 장은 주께서 수난을 당하시기 마지막 말씀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시지요. ‘이제 세상이 끝난다’. ‘그럴 때는 이런 징조들이 있다’.  6, ‘많은 사람이 내가 그리스도다라고 말한다. (알고 계십니까, 한겨레 종교 전문 기자에 따르면 현재 한국에는 300명이 넘는 구세주가 활동중입니다. 주께서 말하시는 말세의 징조는 이런 것들입니다. 전쟁의 소식, 나라가 나라와 맞서고, 민족이 민족과 맞섭니다. 지진과 기근이 일어나고, 그리스도인들이 법정에 넘겨집니다. 12, 형제가 형제를 죽음에 넘겨주고, 자식이 아비를, 아비가 자식을 해하려 합니다. 지금, 2016년의 우리 모습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닐까요?

쯤되면 조금 무서울만도 합니다. 29절에 보면, 이런 일이 일어나면 인자가 가까이 알아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인자는 바로 예수님을 말합니다. 재림 - Second coming - 뜻합니다. 무서움이 생겨나면, 일을 피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날을 알아보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언제 오시나하고 말이지요. 위키피디아에 인류의 멸망을 예견했던 사람들을 검색한 화면입니다. 끝도 없습니다. 재림의 때를 알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인가 봅니다.

그런데, 성경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날은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너희의 바도 아니다. 이런 것입니다. 세상을 끝날 것이다. 잊지 말고 살아라. 그런데, 날이 언제일지는 모른다. 아니, 날은 내일일지도 모르고, 오늘 밤일지도 모른다. 33. 때가 언제인지 모른다. 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 그러니 항상 그가 것처럼 생각하고 성실하게 살아라.

저는 종말론이 좋습니다. 우리는 종말론자들입니다. 끝날 것이다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건전한 종말론 Eschatology 입니다. 끝날 것이니 지금을 성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만약내일이 당신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무얼 하시겠습니까

  노인, 카터(모건 프리먼) 에드먼드 ( 니콜슨). 37년생 동갑내기인 배우가 영화를 한편 찍습니다. 버킷리스트 라는 영화입니다. 정비공과 부자였던 둘은 병원에서 만납니다. 그곳에서 시한부 인생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부자인 에드먼드가 모건 프리먼의 버킷 리스트를 발견하고, 그걸 하나씩 나가는 이야기가 영화의 줄거리입니다.

영상 1,2

 그러다가 정말 해야 하는 일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화해하는 .  방탕한 때문에 멀어졌던 딸과 만나야 하는 것이 에드워드의 버킷리스트가 됩니다.

영상 3.

오래된 영화니까, 결론을 이야기해도 괜찮겠지요? 저는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종말론적 가르침이라 생각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후회 없이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에 초점을 맞추고 살다 죽으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맡겨진 사람들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깨어 있으십시오. 영적으로 깨어 있어서, 주가 주시는 기쁨을 누리십시오. 지금 바로 말입니다. 날은 언제 올지 모릅니다. 지금 감사하고 지금 사랑하고 지금 화해하십시오. 그게 깨어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람에게 일을 맡겨두고 떠나신 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깨어 있으라고 말합니다.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은 무엇입니까? 다양한 삶의 목표가 있겠지요.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내가 천사의 말을 하고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꽹과리다”  “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사랑하는 일에, 오늘이 마지막처럼 깨어있는 우리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깨어 기도하라하나님과 동행하라.


마가복음 읽기 좋은 여름 5, 종이되어 자유하다 (10장 35절 - 45절)

 함께 예배하는 일이 기쁨입니다. 이번 여름, 마가복음을 함께 읽고 있습니다. 복음서를 읽으면 분명하게 있는 것이 있는데, 주께서 땅에서 하신 사역은 가지였다는 것입니다. 그는 가르치시고 고치셨습니다. 말로서 가르치시고, 행위로서 살려내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말과 행위는 결코 분리되지 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신 말씀을 그대로 지키는 분이셨습니다. 그러기에 그의 말씀은 힘이 있었고, 그의 행동은 자체로 가르침이었습니다.

 10장이 되면 주님의 사역은 전환점을 맞이합니다.10 32절은,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간다 하고 건조하게 보도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길이 마지막 여행길임을 알고 계셨습니다. 벌써 번이나, 자신이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지요. 하지만 제자들은 이야기에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오늘 함께 읽은 말씀은 예루살렘을 향하며 제자들과 있었던 첫번째 사건입니다. 죽기 위하여, 세상 가장 낮은 자리인 십자가를 향해 떠나는 여행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마음을 모르는 합니다. 하루는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야고보와 요한이 찾아 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지요. 선생님 부탁이 있습니다.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주님은 아마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시 한번 확인하십니다. 무얼 원하느냐그들의 부탁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우리를 당신의 우편과 좌편에 앉게 주십시오

 제자들에게 때까지 예수님은 슈퍼 히어로였습니다. 이분 옆에만 붙어 있으면 자리 크게 차지할 같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능력만 보았지, 그분의 마음을 깊이 알지는 못하였습니다. 세상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십자가로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들었지만 이해도 못했고, 관심도 크지 않았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들, 내가 마시는 그리고 내가 받는 세례를 받을 있겠느냐? 야고보와 요한이 생각하는 잔은, 그들이 광야에서 경험한, 먹어도 먹어도 마르지 않는 신기하고 놀라운 잔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기억하는 세례는, 요단강에서 하늘이 열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다 라는 말이 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그런 영광스러운 세례였을 것입니다. “물론이지요!!” 하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신 잔과 세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예수의 잔이란, 세상의 모든 모욕과 수모를 묵묵히 감당하는 고통의 잔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잔을 나에게서 치워달라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처절하게 기도하십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뜻이기에 그저 묵묵히 따릅니다. 세례는 물에서 건져 올려짐을 의미합니다. 건져 올려지려면 먼저 죽어야 합니다. 바울의 말처럼, 예수님의 죽으심시에 동참하여 함께 부활하는 . 그것이 예수님이 물어오시는 잔과 세례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제자들이 안타까우셨는지, 주님은 우선 여기서 대화를 멈추십니다. 내가 마시는 잔과 내가 받는 세례를 받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나의 오른쪽과 왼쪽 자리를 게런티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대화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제자들이, 야고보와 요한의 청탁 사실을 알고 분개한 것이지요. “아니, 지들만 높은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사실, 이들은 화를 만도 합니다. 며칠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9 33절에서 이들은 이미 한번 다툰 일이 있습니다. 누가 가장 사람이냐라는 주제를 가지고 말입니다. 내가 났다 이거지요 주님은 한번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고 하면 꼴지가 되어서, 섬겨야 한다. 사랑하고 봉사하고 희생하여야 한다그리고는 지나가는 아이 하나를 데리고 오셔서, 이런 없는 아이 하나를 초대하고 영접하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영접하는 , 위대한 일이다. 높아지려고 하지 말고 사랑하여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9 34절은 이렇게 말하는데요… “그들은 위에서, 누가 자인지 서로 다투었던 것이다
이게 제자들만의 이야기가 아닐 겁니다.누가 큰자인지 다투다 마음 속에, 저의 영적인 여정 속에 이런 싸움은 끊이질 않습니다. 마음속으로 사람들을 세우고, 누가 인지를 알아차리는 일에 저는 아주 능합니다. 그래봐야 남는 것은 자만심 또는 열등감 일텐데도, 자꾸 그럽니다. 인생의 위에서 매일 그러고 있습니다.

마음의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다른 사람들도 저와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사실, 아주 많이 듣습니다. 비교하고 싶어지고, 그것 때문에 많이 힘들다고

비교하려는 마음이 있는 , 순간적인 쾌감은 있을지 모르지만 온전한 평화는 없습니다. 언제나 나보다 사람이 있기 마련이고, 누구와 비교해도 소위 꿀릴 없다면, 정상의 자리에서 언제나 불안할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의 그런 마음이 걱정되셨습니다. 그래서, 높아지려는 마음을 버리고, 섬겨라, 사랑해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제자들은 화가 났고, 주님은 청탁을 하는 제자나, 그걸 가지고 화를 내는 제자나 모두 안타까우시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주님은 다시 제자들을 불러 모으십니다.

제자들은 분명히 예루살렘에서 무언가 하나 터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오래전부터 이스라엘의 왕이 오실 것이라고 예언되었던 도시에서 주님이 영광스럽게 왕위에 오르실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원수들은 모두 처단당하고, 자신들은 주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게 기대에 있습니다.

하지만, 마가복음을 읽으며 확인하겠지만, 주님은 이제부터 이런 모든 기대에 반대로 행동하십니다. 승리의 상징인 백마가 아닌 나귀를 타시고요, 적들을 죽이시는 자신이 죽임을 당하십니다. 타락한 성전을 무너뜨리시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무너뜨리시고, 위대한 하늘의 아들이 힘없이 비참하게 돌아가십니다. 이게 바로 십자가의 놀라운 역설입니다. 주님은 힘이 아닌 사랑과 희생으로 인류의 구세주가 되십니다. 세상의 방식, 힘의 논리와는 전혀 다른, 하늘의 뜻을 쫓는 , 십자가 만이 참된 구원 그리고 부활을 보장하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제자들을 불러 모으시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에서 높다고 하는 사람들. 다스린다고 하는 사람들은 백성들을 마구 내리 누르고, 세도를 부린다…. 요즘 말로 하면 갑질을 한다라고할까요? 하지만 너희는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말씀이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러오길 소원합니다. “너희는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너희는, 나의 제자들아, 너희는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혹시라도, 신앙의 힘을 이용해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세도를 부리며 다른 백성을 마구 내리 누르려는 생각이 있으시다면, 찾아 오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그러지 말라고 당부하십니다.

주께서 알려 주시는 으뜸이 되는 , 가장 만족스러운 삶을 누리는 길은, 섬기는 . 종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종이 있던 시절입니다. 노예를 죽이면 돈으로 갚으면 그만이던 시절입니다. 그런데, 누구보다 자유를 주실 같은 분께서 이제는 종이 되라고 하십니다.

섬기다 라는 말은디아코니아입니다. 사실 말은 식당에서 수종드는 사람 또는 수종 드는 일로부터 말입니다. 누군가를 섬기는 일은 그의 종업원이 되는 것입니다. 아르바이트 보셨는지요?

섬기는 사람들에게는, 상대방의 요구가 우선입니다. 내가 배가 고파도, 그를 먼저 먹여야 합니다. 음식 먹음직스럽다고 서빙하면서 이렇게 먹고 주고 그럴 수는 없잖아요. 또한 섬기는 사람은 상대방의 만족에 함께 기뻐합니다. 음식을 맛있게 먹는 사람을 보고 질투를 느낀다던지 하면 섬김이 아니지요. 그러려면 사랑해야 합니다. 섬김은 사랑의 자연스러운 표현이니까요.

비디오 하나 볼까요?

중고등부 전도사 시절에 봉사 활동을 가면 예배에 한번 나오지 않다가 수행평가 점수 따려고 종이 들고 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지만, 시간 있어 놓고 8시간 달라는 참을 없었습니다 ^^. 그런 섬김에 깊은 즐거움이 있을리 없습니다. 참된 제자들은, 천국 가려고 섬기는 아닙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천국은 여기서 하나님과 살면 천국입니다. 귀찮고 싫어도 천국에 합격해야 하니까 낮아지는 하고 섬기는 하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으로 지금을 사는 . 누구보다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낮아지신, 종이 되신 그분처럼 따라하고 쫓아 하는 자체가 천국의 . 하나님의 다스림을 가능하게 합니다.

섬기는 자가 되라는 말이 무조건 낮은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는 말로 들려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무슨 일을 하든 섬기는 것을 목적으로 하라고 들려야 맞습니다. 상대를 섬기는 마음으로 가르치는 교수들, 직원을 섬기는 마음으로 경영하는 사장님들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일이 무엇이 되었건 그것을 가지고 상대를 만족하게 하는 , 상대의 어려움을 살펴주는 . 그것이자발적으로 종이 이고, 안에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보람과 만족이 있습니다.

비교하고 높아지려고 발버둥치는 삶이 아니라, 낮아져서 평화로운 삶의 ! 그것은 하나님의 시선으로 우리 삶을 바라보고 이해할 가능합니다. 세상의 눈으로 가장 비참한 모습이었을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시고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열등감 혹은 자만심으로부터 온전히 자유할 있는 비결은 바로 섬기는 자의 모습으로 예수님의 길을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선으로,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며 열등감 혹은 자만심을 버립시다. 그분이 섬기는 깊이는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기까지 였습니다. 지금 섬김을 연습함으로 거룩의 지경을 꿈꾸어 봅니다. 조금씩 조금씩 거룩해 지길 원합니다.

  가지 제안을 해보고자 합니다. 혹시 누군가를 섬기는 하나를 꾸준히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나중에 여유가 되면 섬길께요그러다가는 평생 섬김의 기쁨을 누릴 없습니다. 지금할 없는 일은 때도 못하는 겁니다. 아주 작은 일부터 하나 찾아 보시는 어떨까요? 가장 크고 만족스러운 삶을 위해서 말입니다. 일이 예수님과 우리를 닮게 하는 은혜의 통로가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 13절의 말처럼 자유하게 지어졌으니 이제 서로 사랑 때문에 노릇하며, 깊이 자유로워집시다. 평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