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ies 믿음의 거장들 2. 아브라함의 협상 (창세기 18장 18절-33절) - 2016년 2월 7일

함께 예배하는 일이 기쁨입니다
우리는 지난주부터 2월까지 다섯 주일에 걸쳐 믿음의 영웅들에 이야기를 함께 듣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는 노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거룩한 사람. 하나님과 동행하므로 세상의 소리 보다는 하늘의 소리에 기울였던 사람처럼 지난 주간 살아가셨습니까?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열심히 방주를 만드셨는지요?

아브라함의 이야기 또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므로 시작됩니다. 방주를 만들라는 말처럼 이상하지는 않지만 그가 들은 하나님의 말도 듣기 쉽지 않은 말이었지요. 하나님은 어떤 설명도 없이너는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명령하십니다.  

사실,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익숙한 것으로부터의 이별이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요셉, 야곱, 모세가 그러했고, 배를 버리고 떠난 베드로나 평생 여행자로 살았던 바울도 그러했습니다. 예수님도 여행하는 분이셨습니다.

말은, 지금 당장 어디로 떠나라는 말은 아닐겁니다. 익숙함에 안주하지 말라는 말로 들립니다. 사람들은 익숙하면 하나님을 잊는 습성이 있습니다. 처음 이민 오던 , 처음 군대 가던 , 처음 아이가 태어나던 기억하십니까? 익숙하지 않기에 우리는 미지의 세계 앞에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성실하게 하루 하루를 살았습니다. 하지만 익숙해 지면서 우리는 감격도, 신앙도 그리고 삶을 진지하게 대하던 마음도 잃습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을 믿고 떠납니다. 그리고 12 8절에 벧엘 산의 동쪽에 도착한 아브라함은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릅니다.

믿음의 여정에서 그가 겪는 첫번째 어려움은 바로 아내 사라를 지키는 일입니다. 가나안에 정착했는데 기근이 들거든요 그래서 이집트로 내려갑니다. 그런데, 사라가 아름다운 여인이니까, 애굽 사람들이 그녀를 취하려고 자기를 죽일지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녀를 여동생이라고 하지요.

바로가 사라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녀를 왕궁으로 들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양과 소와 노비와 나귀와 낙타를 주고 말입니다. 그런데 일로 여호와께서 바로의 집에 재앙을 내리십니다.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 말하지요. 말하지 않았느냐어서 데려가라

이런 일은 창세기 20장에, 그들이 아비멜렉을 만났을 때에도 똑같이 반복됩니다. 이런 남편이 있다면 어떠세요? 목숨을 위해 자기를 누이라고 말하고, 다른 사람에게 끌려가도 아무 하지 않는 사람 말입니다.  절대 권력 앞에서, 자연인이 살아 남기 위해 가족의 연을 포기해야 하는 안타까운 장면을 읽게 됩니다.

 당신을 누이라고 말하자는 아브람의 요구에 대꾸가 없는 사라의 모습 속에서 그들 앞에 놓인 삶의 위기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해 봅니다. 하지만, 그래도 혼인의 성실성을 파괴시키는 윤리적 위기 앞에서 아브람은 하나님을 향한 최선을 선택하였어야 합니다.

흥미롭게도, 일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혼내지 않으십니다. 마치, 아브라함의 상황을 이해하시는듯그리고 일을 통해 아브라함의 재산은 크게 불어나게 됩니다.

 13 4. 일이 있은 후에 돌아 아브라함은 처음 장막을 쳤던 벧엘에서 다시 한번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립니다. 자신의 부족함 속에서도 끊임없이 지켜주시고 선한 것으로 채우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였겠지요.  

 재산이 불어나자 다른 문제가 하나 생겨납니다. 하란을 떠날 때부터 동행하던 롯이라는 조카가 있었는데, 불어난 재산 때문에 조카 롯의 목자들과 아브람의 목자들이 다툼이 것이지요. 유목민들에게 있어서 자기 양떼를 먹일 있는 물과 초원은 목숨과도 같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롯을 불러서 말합니다. 그리고혈육 간에는 다투면 된다 대전제 아래, 사이의 갈등을 피하는 길은 서로 독립된 생활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브람은 롯에게 우선 선택권을 줍니다. “네가 왼쪽으로 가면 나는 오른쪽으로 가고, 네가 오른쪽으로 가면 나는 왼쪽으로 가겠다.”

멋지지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고, 힘을 가진 사람이지만 그대로 양보의 미덕을 보입니다.    말을 들은 롯은 여기 저기 둘러 봅니다. 요단 들판이, 소알에 이르기까지 물이 넉넉하여 마침 주님의 동산같아 보였고, 이집트 땅과도 같아 보였습니다. 그는 주저없이 그곳을 택합니다. ‘형님 먼저, 아우 먼저식의 미담을 기대하는 우리에게 롯의 선택은 매우 유감스럽습니다.

하지만 눈에 좋아 보이는 것을 택한 것이 결국 화를 부릅니다. 곳은 소돔 , 불로 망하게 되는 땅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요르단 동쪽의 좋은 땅은 모두 롯에게 넘겨주고 아브람은 지금의 남아 있는 땅을 차지하게 됩니다. 아브람에게 주님께서 나타나십니다. 그리고는 아브람을 위로하시지요. ‘ 있는 곳에서 눈을 크게 뜨고 사방을 바라보아라. 땅을 너에게 주겠다

성경은 거기서도 그는 주님께 제단을 쌓아서 바쳤다 (18) 기록합니다. 아브라함의 삶을 지탱했던 힘은 바로 지속적인 예배입니다. 예배는하나님의 부르심과 우리의 응답입니다하나님과의 교재이지요. 삶의 잘못된 선택 가운데에서도, 억울한 일을 당할 때에도 그는 끊임없이 하나님과 소통하였습니다.

그렇게 끊임없이 교재하던, 예배를 멈추지 않던 아브라함에게 어느날 하나님과 천사들이 인간의 모습으로 찾아옵니다. 아브라함은 그들을 극진히 대하고, 그들로부터 내년 이맘 즈음 아들을 얻게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99, 사라는 이미 아기를 낳을 능력을 상실한지 오래입니다.

그렇게 얻게 아들이 이삭입니다. 아브라함은 훗날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라는 명령에도 순종하지요. 이야기는 우리 모임에서 자세히 나눕시다.

아브라함의 집을 떠나던 하나님과 천사들은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악행이 크니, 내가 내려가서 심판하겠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가서 말합니다. 거기에 의인이 있을 텐데, 함께 슬어버리시려고요? 의인과 악인을 떡같이 보시는 주님의 일이 아닐텐데요…  . 의인이 50명쯤 있으면 계획을 철회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이 대답하십니다. 의인 50 있으면 심판하지 않겠다. 그러자 본격적으로 거래를 시작합니다. 45명이 있다면요? 다섯이 모자라면 말입니다주님이 받아들이시지요. 45명의 의인만 있어도 심판을 거두겠다. 아브라함이 한번 제안합니다. 40!! 하나님이 ok 합니다.

성경의 인물들은 원래 하나님과는 이런 식으로 대화하지 않습니다. 그들을 머리를 조아리고 순종합니다. 그저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대로 행합니다. 그런데, 지금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변화시키려 합니다.

주님 노하지 마시고, 말씀을 들어주세요. 30명이면 어떻습니까?’ 협상의 달인처럼 보입니다. 주님이 받아들이시지요. 다시 20 제안합니다. 다시 ok. 아브라함은 말합니다. 화내지 마십시오. 10명이면 어떻습니까? 주님께서 끝내 마지막 제안까지 받아들이십니다. 10명만 있어도 멸하지 않겠다.

아브라함은 그의 이야기 처음부터 수많은 축복의 약속을 받습니다. 이를 The Holy Covenant  라고 하는데, 하나님 편에서 그분이 어떻게 주겠다는 약속은 10 넘게 등장합니다. 내가 너를 축복하라리, 때문에 세상이 복을 받을 것이다, 하늘의 별처럼 자녀가 많을 것이다.
그런데, 아브라함 측에서의 조건을 금방 찾아볼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무얼 잘해서가 아니라, 그저 아브라함을 택하셔서 복을 주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부탁하시는 것이 있는데, 바로 것입니다. ‘나에게 순종하고, 옳고 바른 일을 하라’ (19) 개역 성경으로는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라.라고 합니다.

명령을 듣고 아브라함이 가장 먼저 일이 바로 거래입니다.
아브라함은 멋진 순종의 아이콘입니다. 자식을 바치라는 명령에도 순종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막아서려는 보입니다. 옳고 바른 일을 하라는 분의 명령을 따르는데, 그는 하나님의 심판을 예고하는 하나님의 가슴 아픔을 았습니다. 끊임없는 예배와 교제 속에서 그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그를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릅니다. 그는 믿었습니다. 우리도 믿습니다. 믿음이 강조됩니다. 그런데, 무얼 믿습니까?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심판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사랑 가득한 존재임을 믿었습니다. 그러니까, 자녀를 바치라는 명령에도 순종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하늘과 땅의 중재자로 살아갔으면 합니다아브람의 이름은 아브라함으로 바뀝니다. 많은 사람의 아버지가 되다라는 뜻은 많은 이를 사랑하며 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의 축복에는 항상 너로 인해 세상이 복을 받을 것이라는 말이 따라 붙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과 만날 있도록, 중재자의 역할을 해야 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런 분이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다리를 놓는 . 우리도 그렇게 살아 가기 원합니다. 하나님 보다 먼저 세상을 심판하려하기 보다, 아들을 주실 만큼 세상을 사랑하셨던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드리는, 그래서 그와 함께 생명과 평화의 이야기를 확장해가는 삶을 살아가기 원합니다. 끊임없는 예배 가운데, 하늘과 땅의 중재자였던 아브라함처럼 그렇게 살아보지 않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