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돌 (사무엘상 17장 32절 – 50절) - 2015년 1월 19일




함께 예배하는 것이 큰 기쁨 입니다. 성경에는 참 재미있는 많이 들어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신앙 생활은 곧 이야기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 비단 신앙생활 뿐만이 아니라 우리네 삶 자체가 그렇습니다. 지난 주에 새로운 사람들 몇 명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사실, 누구를 만난다는 건 그의 이야기를 듣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알아간다는 것? 그것은 그것은 하나님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치지합니다. 알고 계시지요? 예수님 또한 엄청난 이야기꾼이셨습니다. 여러분들 안에는 어떤 하나님의 이야기가 있습니까? 이제 내일부터 개강이지요. 이번 학기 어떤 이야기를 만드실 생각입니까?


여기 우리를 초대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성경이 그저 재미있는 소설책이 아닌 이유는, 이 책 전체가 하나님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다윗의 이야기를 듣지만, 결국 그 속에는 하나님의 일하심이 있습니다. 다윗의 이야기는 곧 다윗이 의지했던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청년의 시기는 이제 자기 이야기를 갖게되는 때인 듯 합니다. 배우고 들어왔던 추상적인 고백들이 우리 삶을 통해 구체화 될 때입니다. 이야기란 인간과 진실 사이의 최단거리 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자신만의 하나님 이야기를 써가는 다윗을 생각해 봅시다.


다윗. 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사무엘서는, 특히 사무엘 상은 사무엘 상 2장 30절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거기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시거든요.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는 내가 존중히 여기겠고, 나를 멸시하는 자는 내가 경멸하리라.”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자. 그를 사랑하며 존중하고, 그를 의지하는 자를 주께서 지켜 주신다는 말입니다. 다윗의 인생에는 많은 위기가 있었습니다. 죄를 짓기도 하고, 그의 잘못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입기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예수님의 육체적 선조로, 그리고 이스라엘의 위대한왕으로 성경과 역사 속에서 존중받는 것은 끝까지 ‘하나님을 존중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이스라엘 역사속에 등장하는 계기는 이렇습니다. 철기를 사용하던 블레셋 군사들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항상 골치거리였습니다. 국경에서의 전쟁은 그치지 않았고,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은 누가 이 문제를 해결해 줄까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이새라는 사람의 여덟번째 아들입니다. 그들은 베들레헴에 살고 있습니다. 베들레헴은 예수님의 고향이지만 사실, 그냥 시골입니다. 싸움은 엘라 골짜기에서 있구요. 엘라는 베들레헴에서 남서쪽으로 25킬로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이새의 세 아들은 이미 전쟁터에 나가 있습니다. 아들들의 안부가 궁금했던 아버지는 다윗을 시켜서 곡식 한 에바하고 떡 열 덩이를 형들에게 갖다 주고, 천부장에게는 치즈 열 덩이를 주어 안부를 확인하라고 합니다. 에바면 한 이십리터 정도 되는 단위라고 합니다. 에스겔의 환상 속에서 한 여인이 하루 종일 곡식을 주어서 한 에바를 만들지요. 꽤 무거운 짐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25킬로를 걸어가야 하는데, 아버지는 다른 다섯 형들을 시키지 않고, 얼굴이 붉고 작은 소년 다윗을 시킵니다. 신뢰가 있었을까요? 다윗은 한마디 불평 없이 길을 떠납니다. 어쩌면 형들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아들. 이 다윗은 떡잎이 다른 사람이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육신의 아버지에게 순종하지 않는 자가 하늘의 아버지에게 순종한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그렇게 소년은 전쟁터에 가게 됩니다. 그런데, 그 때 또 블레셋 장수 하나가 시비를 겁니다. 키 2미터 90, 갑옷 무게 60kg. 그가 이스라엘 군대를 향해 누구든지 일대일로 한번 붙자고 합니다. 아무도 나가는 사람이 없지요. 다윗이 그가 하는 말을 듣고 의분을 일으킵니다. 저게 뭐길래 살아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가… 하지만, 그런 다윗을 큰형 엘리압은 혼만 낼 뿐입니다. 여기가 어디라고 니가 왔느냐. 양은 누가 키우냐. 니가 있을 만한 곳이 아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려 한다는 말을 전해 들은 사울 왕은 그를 부릅니다. 그런데 보니까 소년인 것이지요. 말합니다. 넌 안된다. 너는 소년이고, 그는 용사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윗은 말합니다. 내가 목자인데요, 아버지의 양을 칠 때 사자나 곰이 양을 물어가면 내가 그것들을 쳐 죽였습니다. 그런 짐승들도 죽였는데, 하나님을 모욕한 저 블레셋 사람도 문제 없습니다. 이게 오늘 읽은 본문의 이야기입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아주 아주 자연스럽게 시편 23편이 떠올랐습니다.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라고 고백합니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고 자잔한 물가로 인도하시고 자기 잔이 넘친다고 말합니다. 다윗의 삶이 왕의 삶이었지만 항상 평화로운 것은 아니었거든요. 결국 이 전쟁에서 이기는데, 이 일이 있자마자 자신의 장인이 된 사울에게 질투를 얻어 근 10년 동안 쫓겨 다닙니다. 살려고 미친 척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는 이런 노래를 부릅니다. 그가 나를 목자처럼 지키신다. 다윗이 고백하는 목자이신 하나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양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생명도 아끼지 않으시는 분. 사자와 곰의 발톱으로부터 우리를 건져내시는 분.


다윗은 그런 하나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존중한다는 것. 누군가를 높게 인정하는 일은 바로 그분의 능력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 없음- 의심은 곧 그를 완전히 인정하지 않는 것이지요. 다윗은 자신의 능력이나 군대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고 나아갑니다. 사울이 좀 안되 보였는지 자기 군복을 입혀 주지요. 하지만, 크고 익숙치 않아 벗어 놓고 가게 됩니다. 그의 손에는 막대기하고 매끄러운 돌 다섯개가 들려 있습니다.
골리앗이 보니 어리고 예쁘장하게 생긴 다윗이 우습기만 합니다. 나를 개로 여겨서 막대기를 가져 왔냐 하고 조롱하며 다윗을 저주합니다. 다윗은 담대하게 대답합니다. 함께 읽읍시다. 17장 45절입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하나님 마음이 얼마나 좋으셨겠습니까? 그는 중심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처음에 다윗에게 기름을 부을 때도 그랬습니다. 사무엘이 이새의 집에 갔는데, 누구를 왕으로 삼을지 모르겠는 겁니다. 크고 건장한 아들들을 모두 지나가게 했는데, 하나님이 뽑으신 사람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리고나서 막내 다윗이 옵니다. 예쁘고 앳된 얼굴의 소년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시지요. 바로 이 사람이다 어서 그에게 기름을 부어라. (삼상 16장 12절) 바로 그 전에 주님의 말씀은 이것입니다. 7절입니다. ‘너는 그의 준수한 겉모습과 키만을 보아서는 안된다. 그는 내가 세운 사람이 아니다. 나는 사람이 판단하는 것처럼 그렇게 판단하지 않는다. 사람은 겉모습만을 따라 판단하지만 나 주는 중심을 본다’ 결국 하나님께 사용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은 중심입니다.
그러니 다윗의 중심을 보신 하나님이 얼마나 기쁘셨겠습니까?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고 떨고 있는데, 다윗은 이런 고백을 하고 있으니, 그로 인해 하나님의 이름이 얼마나 높아진 것입니까?. 47절입니다.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이 대책없는 소년의 이야기가 가슴 벅차게 좋은 것은, 이 위대한 이야기 가운데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승리할 것이다” 라는,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는 일을 단 둘 만이 알고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과 다윗 입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는 힘없는 소년이 정의를 위하여 용기를 가지고 나아가서 힘쎄고 건방진 악인을 죽였다… 는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믿고 의지하는 자. 자신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어떻게 높여 주시는 가를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전쟁으로 보이지만, 사실 이것은 이 전쟁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 선언하는 다윗이 믿음 때문에 하나님과 골리앗의 전쟁이 됩니다. 승패는 뻔한 것이지요. 어떤 골리앗을 대면하고 계십니까? 이제 한 학기가 시작되지요. 이기기 힘들어 보이는 자들을 상대하고 계십니까? 내가 누구와 함께 있는지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어령 선생이 이 본문에 대해 글을 썼는데, 참 흥미롭습니다. 문화인류학적으로 이 본문을 보면, 이는 사람과 짐승의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능력을 따라할 수 있는 많은 동물이 있지만, 어떤 동물도 싸움을 할 때 원거리에서 무기를 사용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동물들의 백병전은 붙어서 하는 것입니다. 골리앗은 그렇습니다. 아무리 힘이 세도 그는 딱 붙어야 싸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36절에 다윗은 그가 짐승의 하나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런가하면 다윗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철기를 가지지는 못했지만 인간이기에 떨어져서 싸움으로, 무기를 던져서 이 싸움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싸움이 인간과 동물의 싸움인 이유를 또 하나 발견합니다. 하나님을 기억하는 자. 그가 곧 참 사람입니다. 제 가진 것, 자기 힘으로 무엇이든 영원히 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의 한계를 모르는 동물들의 모습입니다. 그런가하면 참 인간은 자기를 보내신 그 분의 힘과 뜻에 의지하여 살아갑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이 인간이 가진 돌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인간의 돌은 그냥 돌이 아닙니다.


인간은 하늘을 볼 수 있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살아갈 때 우리는 참 인간일 수 있습니다. 여기 다윗은 우리에게 참사람이 되는 법을 알려 줍니다. 전쟁은 그분에게 맡기고, 그 분의 힘을 의지하여 당당하게 나아가라...

여러분들 주머니에는 뭐가 있습니까? 다윗은 전쟁을 위해 몸에 맞지 않는 무기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돌만 가지고도 충분하다 이것입니다. 결국 돌은 네 개나 남았습니다. 하나님은요, 우리에게 없는 것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모세는 그 가지고 있던 지팡이 하나 가지고 민족을 통치하였습니다. 5000명도 훨씬 넘는 사람들이 배고파하던 그 언덕에서 예수님은 한 소년이 가지고 나온 작은 도시락 하나 가지고 모두를 배부르고 행복하게 만드셨습니다. 여러분의 손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다윗이 물매질을 잘 하였다면, 여러분은 뭘 좀 잘하십니까? 하나님은요, 바로 그것을 통해 높임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이제 다시 골리앗을 향해 나아갑니다. 홍안의 소년은 쫄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가 여러분들의 이번 학기를 통해 리바이벌 되기를 깊은 마음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