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되니 가족들 생각이 납니다. 용혜원은 가족을, “혈육과 인연의 끈으로 묶인 사람들, 언제나 돌아갈 수 있는 곳” 이라고 말합니다.
하루는 예수님이 사람들을 가르치실 때에, 가족들이 찾아 옵니다. 마리아와 예수의 형제들입니다. 예수님의 친형제들이 있었을까요? 그건, 조금 있다가 생각해 봅시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상한 말씀을 하십니다. 누가 내 어머니고 형제인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들이 형제이고 가족이다 라는 말을 하십니다. 그 말을 들은 마리아야 마음이 조금 서운했을지 모르지만, 이 말을 통해 주님은, 인연의 끈으로 묶인 사람들, 언제나 돌아갈 수 있는 공간이 단지 생물학적 관계에 그치지 않음을 보여주십니다
사실 저는 “형제” 혹은 “자매” 라고 상대를 부르는 일을 그리 즐거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교회 사람들만 사용하는 용어이기 때문입니다. 친절이란, 타인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인데, 교회가 세상에 친절하려면 세상이 쓰는 말을 써야지… 했습니다. 그럼에도 이 말을 사용하는 이유는 첫째, 다른 대안이 없어서이기도 하고^^,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서로를 자매와 형제라고 부르면서, 아 저사람이 그냥 멤버가 아니라, 고객이 아니라 나의 형제이고 자매임을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좋은 교회를 이루어가는 일은 좋은 가족을 만들어 가는 일과 닮았습니다. 오늘은 좋은 가족이란 무엇일까 생각하여 봅시다.
성경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좋은 가족’ 이 있는데 바로 예수님의 가족입니다. 이 집안에 일어난 놀라운 일. 그것은 인류에게는 표현 못할 축복이지만, 당사자들에게는 어쩌면 감당하기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거룩한 가정의 모습을 잃지 않습니다.
천주교회에서는 이 가정을 성가족이라고 부른다. 마치 거룩한 몇 사람들을 성인이라고 부르듯이 이 가족에게도 특별한 지위를 부여합니다. 사도신경에서 성도가 서로 교통한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을 고백할 때 우리는 어떤 성인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이 거룩한 사람들이며, 주님 안에서 그들과 교통할 수 있음을 말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저는 거룩한 가정을 믿습니다. 성가족이라함은, 마리아 요셉 예수님의 가정을 의미함과 동시네, 우리의 모든 가정이, 우리의 모든 공동체가, 그리고 우리 교회가 거룩한 가정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가정 가운데 두 사람을 떠 올려 보지요. 말없는 요셉, 그리고 마리아의 늙은 사촌언니 엘리사벳입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마리아에게 임신 소식이 전해집니다. 그 시기에 마리아는 요셉이라는 남자와 약혼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임신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지요. 신명기 22장에 이런 경우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이 있습니다.
약혼한 남자가 있는 처녀를 다른 사람이 성읍 안에서 만나 같이 잤을 경우에는 둘 다 그 성읍 성문 있는 데로 끌어내다가 돌로 쳐죽여야 한다. 그 처녀는 성읍 안에서 당하면서도 소리를 지르지 않았기 때문에 죽일 것이요, 남자는 이웃의 아내를 범했기 때문에 죽일 것이다. 이런 부정한 짓을 너희 가운데서 송두리째 뿌리뽑아야 한다.
약혼한 남자가 있는 처녀를 다른 남자가 들에서 만나 겁탈했을 경우에는 그 여자를 겁탈한 남자만 죽여야 한다.
그러니까, 만약에 불륜을 저지른 것이면 죽이면 되고, 겁탈당한 것이라면 남자만 잡아도 주기면 됩니다.
성경은 자세히 알려주지 않지만, 이 하늘 무너지는 소식을 들은 요셉이 누구였는지 조금만 살펴볼까요? 전통에서는 그가 나이가 아주 많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마리아가 다른 형제들을 낳지 못했다고, 평생 동정녀였다고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예수의 형제들은 사촌형제들이라 생각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의 나이가 몇살이었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분명한 것은 나이와 상관 없이 무척 현명한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목수였다고 하지요. 원어로는 tekton 인데 성경에서는 arch-tekton 건축가, 대장 목수 라는 말이 많이 쓰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아닙니다. 그냥 tekton 이고 마을의 작은 일감을 처리하던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태는 그에게 아주 흥미로운 형용사를 붙입니다. 19절. 요셉은 의로운 사람. 공동번역 성서에는 법대로 사는 사람이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위에서 법을 알려드렸지요. 그들이 삶의 기준으로 삼던 신명기 법에는, 그녀를 죽이라고 써있습니다. 그게 법입니다. 하지만, 그가 따르는 법은 세상의 마른 글귀가 아니라, 하나님의 법임이 분명합니다.
의로운 사람, 요셉은 조용히 파혼하려고 합니다. 현명하지 못한 처사일지도 모릅니다. 이거 끊으면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요? 요셉의 애라고 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아이의 양육책임도 그에게 돌아올지 모릅니다. 신부의 집에 이미 지불한 돈 보다 더 많은 돈을 내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요셉은 분노에 압도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문자로 드러난 법이 아니라, 용서를… 아니 용서라기 보다는 즉각적인 조치와 분노의 표현을 자제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억울하고 화가나는 상황 속에서, 한발 멈추어 서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 일. 그것이 바로 요셉이 지킨 하나님의 법이었습니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즉각적으로 저주하기 전에, 왜 그렇게 되었는가 살펴보고 이해의 여지를 남겨두는 일. 그것이 바로 사랑의 법이지요.
조금만 더 생각해 볼까요? 그런 소식을 들은 날. 그렇게 알콩달콩한 스토리는 없었을지 모르지요. 연예 결혼이 아니었고, 서로 잘 몰랐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옛날 할머니 말 들어 보면 신랑 얼굴도 못 보고 결혼하는 사람들이라도 그 와중에 다 로맨스가 있었답니다. 요셉이라고, 마리아라고 왜 행복한 신혼과 아름다운 가정에 대한 기대가 없었겠습니까? 하지만 그들이 기대는 산산히 무너집니다. 마리아의 임신 소식이 드러난 바로 그 날은 요셉에게 최악의 날이었을 것입니다.
요셉에게 가장 힘든 날, 그 최악의 날 하나님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일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인간이 되시는 하나님. 그 놀라운 일 가운데 하나님은 요셉을 초대하고 계셨습니다. 요셉은 보지 못하였을 뿐입니다. 요셉은 2000년 후에 사람들이 자신의 고민을 이렇게 이해해 줄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뜻하지 않은 일이 일어날때, 이게 뭔가 싶을 때 요셉 생각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삶의 가장 어려운 순간, 주님이 놀라운 일을 준비하실 것을 믿으면, “주의 뜻을 따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힘을 합쳐서 선을 이룬다’ 는 로마서 8장 28절의 말이 자기 이야기로 고백될 것입니다. 그 지혜로운 인내의 시간 끝에 요셉은 천사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하나님이 일 하고 계시다는 라는 말씀. 임마누엘이라 하라는 말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소식.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오해는 풀리고, 거룩한 가정이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교회라는 가정은, 또는 가정이라는 교회는… 예수님의 피와 하나님의 섭리라는 인연으로 맺어져서, 언제든지 돌아가고 싶은 공간은 바로 이러한… 인내해주고, 들어주고, 그 일에 담긴 하나님의 계획을 볼 줄 아는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이 이야기의 다른 한 편을 비추어 보지요. 요셉에게도 쉽지 않았지만, 마리아에게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이야기를 잘 종합해 보면, 하나님이 요셉에게 일하시는 순간, 마리아는 엘리사벳의 집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임신할 것이라는 말을 전해 듣고, 서둘러서 유대 산골 - 아인카렘이라고 전해집니다. - 로 가거든요.
사실 천사를 만나는 일은 그렇게 즐겁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이 가브리엘이라는 천사가 다니엘서에도 등장하는데, 다니엘은 그를 만나고 몇날 몇일을 일어나지도 못하고 몸져 눕습니다. 마리아도 그랬을까요? 그 신비로운 만남을 한 후에 마리아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베이비샤워 레지스터도 아니고, 임신 소식을 sns 에 올리는 것도 아니고요… 엘리사벳의 집을 방문한 일입니다.
어쩌면 마리아에게는 자신을 돌봐줄 다른 사람이 없었나봅니다. 있더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믿지 않으리라 생각했나봅니다. 그런데, 천사가 마리아에게 말하거든요. 봐라, 니 친척 엘리사벳도 나이가 많은데 아이를 가졌다. 하나님은 못하는 일이 없으시다. 그 말을 듣고, 마리아는 엘리사벳을 찾습니다. 적어도 일주일은 걸어야 하는 거리지만, 마리아는 그녀를 찾아 갑니다.
나에게 일어난 어떤 일.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두렵고 신비한 일. 그 일을 대하고 마리아는 누군가 자기를 알아 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마리아가 그 집에 도착하자마자, 엘리사벳은 말합니다. 복중의 아이는 뛰놀지요. 이 아이가 세례요한입니다. ‘그대는 여자들 가운데서도 복을 받았고, 그대의 태중의 아이도 복을 받았습니다. 주님의 어머니가 내게 오시니 참 좋습니다’
자신의 사정을 알아주는 사람, 두려운 자를 축복하여 주는 사람. 그 사람의 따뜻한 이야기를 듣고 마리아는 얼마나 좋았겠는가?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기에 천사의 말에 순종하기는 했습니다. 오늘 본문 바로 전 장에서 마리아는 “주님의 여종입니다. 당신의 말대로 이루어지소서” 하는 고백을 하였습니다. 그래도 얼마나 불안했겠습니까? 하나님의 부르심은 때론 그렇게 엄중합니다. 내가 꿈꾸고 계획한 그 길이 아니라,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그 길이 아니라 전혀 알지 못하는 길, 좁고 어려운 길로 가라는 그 말씀 앞에서 두려움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런데,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보고 노래합니다. 그녀도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경험이 있거든요. 지금 배 속에 있는 6개월된 아이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잉태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남편이 말을 못하게 되는 일이 있었지요. 자신의 경험이 마리아의 일을 더 잘 이해하게 돕는 재료가 됩니다.
교회라 불리는 가정은, 그리고 가정이라 불리는 교회는 엘리사벳의 집, Ein Karem 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를 통해 예수가 세상에 전달될 수 있습니다. 언제든지 돌아가고 싶은 곳. 특별히 두렵고, 알 수 없고, 답답할 때일수록 꼭 찾고 싶은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제서야, 그 안전한 공간에서 엘리사벳 언니의 이야기를 들은 후에야 마리아는 노래합니다. 주님의 여종이라는 작은 고백이 이제는 아름다운 노래로 바뀝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마음이 구주 하나님을 좋아합니다.”
생명과 평화이신 예수를 받아 안을 수 있는 아름다운 가정… 이 거룩한 가정이 우리 안에 세워지기를 소원합니다. 다시 한번이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들이 모두 가정이잖아요. 교회 뿐만 아니라 우리가 관계하는 모든 사람들 사이에서 요셉과 엘리사벳의 역할을 우리가 해 내길 원합니다. 그럴 때에 예수의 구원역사가 우리 안에 시작될 것입니다.
억울하고 어려운 일 앞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생각하십시오. 화가나는대로 반응하고 말라비틀어진 ‘법’ 대로 일을 처리하려기보다는 인내하고 용서하고, 기다려 주고 이해해주는 하나님의 법으로, 서로를 대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두려워하는 사람들, 친구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엘리사벳의 집이 되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만난 하나님, 여러분이 겪은 어려움과 경험들이 누군가를 진심으로 위로해 주는 좋은 도구가 될 것입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옵니다. 예수를 받아드릴 준비가 되지 않은 헤롯의 궁전에, 그 일은 위협이고 위기였습니다. 예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성가족에게, 그 일은 말할 수 없는 기쁨이었습니다. 이번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내실런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