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늘 섬기는 하나님 (다니엘 6장 10절 17절) - 2016년 1월 24일

함께 예배하는 것이 기쁨입니다.
지난 4 동안 기도로 여는 학기아침 기도회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다니엘서를 함께 읽었지요. 우리의 역사도 그렇지만 이스라엘은 어려움이 많았던 민족입니다. 그들의 성전은 강대국들에 의해서 무너졌고, 이곳 저곳에 포로로 끌려가 살게 되었습니다. 때마다 다니엘의 이야기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다니엘서의 일관된 가르침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참된 왕이시다’ 
세상을 그리고 나를 다스리는 분은 바벨론이나 페르시아의 왕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의 가르침 또한 이것이었습니다. ‘보라천국” (Basileia in Greek) 가까이 왔다’.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란 영토적인territorial 개념이라기 보다는 정치적인political 개념이지요. 하나님의 나라는 다시 말해하나님의 다스림” the reign of God 뜻합니다. 어느 나라에 살던지 다스림 속에 산다면 그곳이 하늘나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니엘은 땅에서 하늘 나라를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나라를 잃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유다의 여호야김 Jehoiachin 때에 신흥 강국인 바벨로니아가 유다를 점령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성전의 여러 물건을 강탈하고, 포로들을 데리고 자기네 땅으로 돌아갑니다. 유대인이었던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도 끌려가게 됩니다.

느브갓네살 왕은 이스라엘 백성 중에 능력 있는 젊은이들을 선택해서 바벨론의 언어를가르치고 바벨론의 음식을 먹이고 바벨론의 문화를 교육합니다. 문화적으로 그들을 바벨론 사람으로 만들려는 시도입니다.  바벨론은 그들의 이름을 바꿉니다. 다니엘은 벨드사살이 되고, 그의 친구들도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라는 바벨론식 이름을 받게 됩니다. 이름을 잃는다는 것은 뿌리를 잃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하나님 뿌리 박고 있는 그들의 정체성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서 1장에서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왕이 내려준 음식을 먹어야만 했습니다. 좋은음식이었겠지요. 하지만 다니엘은 그것을 거부합니다.  유대인들에게 음식은 그들의 정체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아무거나 먹을 없었습니다. 다니엘 1 8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뜻을 정하였다는 말이 저는 좋습니다. 신앙인이란 하나님의 방식대로 사는 ,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지키기로뜻을 정한 사람입니다.  다니엘이 제안합니다. 자신이 왕이 내려준 음식을 먹지 않으면, 자신을 관리하는 사람도 곤란할테니까, 10 동안 시험을 보자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채소만 먹고, 열흘이 지나서 왕의 음식을 먹은 사람과 자신의 얼굴을 비교해달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열흘 후에 그의 얼굴빛이 다른 사람들보다 좋고 건강했다고 전해줍니다. (1:15)

이런 생각 봅니다. 다니엘이라고 royal food 대한 마음이 없었겠습니까? 자기만 너무 거룩한 혹은 잘난척 한다고 빈정대는 사람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왕의 명령을 거절하였다는 이유로 위험에 빠질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니엘은 충분히 예상되는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로 뜻을 정합니다. 그때 세상 사람들은 다니엘을 통해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믿음의 the power of faith’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 다니엘이 오늘 본문에서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아마 오늘의 본문은풀무불에 던져진 친구들 함께 다니엘서의 가장 유명한 이야기일 것입니다.이야기는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으로 지혜를 얻은 다니엘은 왕의 신임을 얻게 되지요. 그러자 그를 시기하는 사람들이 생겨납니다. 포로였던 다니엘이 나가는 것이 싫었나 봅니다. 그런데, 6 4절에 보면 그에게서 허물을 찾으려 했지만, 아무 잘못도 발견할 없었다고 합니다.

결국 다니엘을 곤경에 빠뜨리고자 그들이 찾아낸 방법은 그의 신앙을 문제 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the administrators and the satraps went as a group to the king  삼십 동안 왕에게만 기도를 하는 특별 법을 만들라고 제안합니다. 왕은 그것을 좋게 여겨서 법을 공표하고 자신의 직인을 찍습니다. 하지만 다니엘은 그런 법이 있는 알면서도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하루 기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을 모함하는 사람들의 의도대로 일이 돌아가는 것입니다.

왕은 소식에 몹시 괴로웠습니다. 하지만 신하들은 한번 도장을 찍은 법률은 지켜져야한다고 주장합니다. 왕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다니엘을 사자굴에 던져 넣으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대가 섬기는 그대의 하나님이 그대를 구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16)

, 이야기의 결론을 살펴보기 전에 성경에 우리 모습을 잠시 비추어 봅시다. 만약에, 여러분이 다니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만일, 하나님이 아닌 어떤 존재에게 30일동안 예배하라는 정부의 명령이 내려진다면?
            
실제로 기독교의 역사 속에서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킨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치에 저항해서 싸우다가 목숨을 잃으신 디트리히 본훼퍼 목사님은참된 신앙이란 바퀴에 짖눌리는 사람을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바퀴를 멈추게 하는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생명과 평화 때문에 목숨을 버린 사람입니다.
            일제의 강점이 시작될 목숨을 걸고 민족을 지킨 사람들. 커다란 위협 속에서도 탈북자들과 난민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 등등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다니엘의 길을 택하였습니다.
        
세상에서는, 갈등을 일으키지 말고, 나도 좋고 남도 좋은 타협점을 찾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것도 같습니다. 사사건건 싸움을 일으킬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믿음의 길을 가다 보면, 선택을 해야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것인지, 세상의 왕에게 기도할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시 한번 묻지요.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사실,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에 살면서 이런 상황에 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실제적인 위협이 없는데, “나는 다니엘처럼 죽음을 무릎쓰고서라도 신앙을 지킬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 신뢰를 주지 못합니다. 때가 되어 봐야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있습니다. 지금 외치고 다짐하는 일이 어쩌면 그저 신앙을 과시하는 것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다니엘의 이야기가 단지그런 상황이 되면 참고해 만한 이야기 아닌 것은, 지금도 이와 비슷한 선택이 우리 앞에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전에 이야기 했던 것처럼, 기도가 대화라면, 다니엘이 처한 상황은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과 대화하며 세상의 방식으로 인생을 살아가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과의 대화를 선택하면 위협이나 손해가 오는 상황에서의 선택

사랑하는 일은 어떠세요? 세상은 사랑 받을 만한 사람, 사랑해서 득이 될만한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랑받을만하지 않은 우리를 사랑하셨고,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처럼 사랑하려면 많이 이해해야 하고, 많이 울어야 것입니다. 때론 자존심을 죽여가면서 누군가를 사랑해야 할지 모릅니다.
            
용서는 어떤가요? 용서가 안되는 인간을 대하는 세상의 방식은, 아프게 만큼 돌려주라는 것입니다. 만큼만 해도 괜찮습니다. 아픔을 배로 복수해야 마음이 풀리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방식은, 주를 향한 기도는 우리에게용서하라 말씀하십니다. 일곱번씩 일흔번이나 말입니다. 손해와 아픔이 있어도, 용서해야 하는 것이, 주께서 부탁하신 우리의 사명입니다. 세상의 방식이 아닌 하나님의 방식으로 살아갈 각오가 되셨는지요?
        
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져집니다. 사자굴의 돌문이 잠겼고, 하루가 지났습니다. 왕이 찾아와 보니 다니엘은 살아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해피앤딩이지요.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하나님과의 대화를 선택한 사람들을 보호하여 주십니다. 그런데, 장면에 오버랩되는 그림이 하나 있습니다. 잠겨진 돌문. 하루 . 그리고 살아난 사람.

믿음을 통한 다니엘의 승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고하는 합니다. 22절에서 그렇게 말하거든요. “하나님께서 내가 없음을 아십니다.” 억울하게 사자굴에 던져지지만, 하나님은 아신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에게 그것이면 족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가 없이 돌아가셨음을 증명합니다.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살았던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다스리실 것을 알고위험해 보이지만 참된 선택하였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그토록 알려주시기 원하신 예수님은 자신의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과 우리의 사랑하는 관계는 죽음도 갈라놓을 없다 라는 사실을 보여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선택 앞에 계십니까?  희생하고 사랑하고 포기하고 죽어야 하는 하나님의 방법과 빼앗고 이기고 복수하고 판단하는 세상의 방법 가운데, 어떤 선택을 하려 하십니까? 하나님과의 소통을 멈추지 않길 바랍니다. 위험하거나 억울해질지 몰라도, 우리의 '하나님의 딸과 아들' 정체성을 지켜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좋은 선택을 하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섬기는 하나님 당신을 지키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