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6일은 서해 바다에서 큰 배가 깊은 바다에 잠긴 지 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어른들의 탐욕과 무책임함으로 생떼 같은 아이들과 무고한 사람들 304명이 그날 목숨을 잃었습니다. 믿기지 않는 소식에 처음에는 혼란스러웠고, 그 후에 여러 소식들을 들으며 분노했습니다. 자녀를 잃은 이들의 단장하는 아픔을 보며 함께 눈물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은 조금씩 잊혀져 삼백예순다섯 날이 지났습니다.
어떤 이들은 세월호 이야기를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이제 삶으로 돌아오자고 말합니다. TV를 보다 잔인한 장면이 나오면 그러하듯 채널을 돌리자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은, 그래서 오늘도 예배에 사용되는 소중한 주보 전면에 ‘세월호’ 라고 쓰는 것은, 여전히 아파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 돌아오지 않은 이들을 기다리는 아홉 가족이 있고, 억울함과 궁금함 때문에 마음으로 자녀를 떠나 보내지 못한 부모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사람이 되고자하는 우리들은 성령이 곧 ‘위로자’ 이심을 알기에 누구보다 위로가 필요한 이들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단 며칠이라도 그들과 마음을 함께 하고자 다시 노란 리본을 달았습니다. 다운타운 주차장을 나오는데 계산을 하던 미국인이 그게 뭐냐고 묻습니다. 작년 한국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고를 추모하기 위해서 달았다고 이야기하니까 '나도 기도할께요' 라고 합니다. 그 따뜻한 공감의 말에 종일 서늘하던 마음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공감”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공감하셔서 우리와 똑같이 시험 받으셨습니다.(히 2:15) 그리고 그 모습 우리가 닮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우는 자들과 함께 우십시오” (롬 12:15)
다시 4월 16일을 맞이하는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부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