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7일 주일 예배 - 교회, 사랑의 공동체 (요한복음 13장 34절-35절) 한명준 목사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부족한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복된 제단에 귀한 말씀을 들려주시길 기대합니다. 특별히 새롭게 시작하는 메디슨 한인 연합 감리교회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교회로 아름답게 세워져 가길 기대합니다. 멀리서 기도하겠습니다.
  지금 제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교회" 라는 표현을 썼는데요, 과연 하나님의 뜻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을 분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일본의 성인, 우찌무라 간조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네 가지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뜻은 자연을 통해 나타납니다. 여기 오니 여름이 아니라 가을이네요. 하나님이 하신 일, 그분의 작품을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뜻은 인류 역사를 통해 증거됩니다. 우리 가운데 하시는 일들. 국가, 사회 등 거창한 일로부터 한 개인의 역사까지 하나님은 우리의 삶과 역사를 통해 자신의 뜻을 펼쳐보이십니다. 여기 모인 우리 모두가 다 자신만의 역사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앙의 눈으로 보면 그 일 구석 구석마다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슴을 고백하게 됩니다. 셋째, 하나님의 뜻은 양심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 일찍이 맹자 선생님도 양지양능이라하여 배우지 않아도 아는 것과 배우지 않아도 행할 수 있는 것을 이야기 하셨지요. 우리가 이 땅에 있기 전부터 부어진 은총. 바로 그것이 선행하는 양심입니다. 그 선한 일을 하려는 마음을 통해, 그 마음을 들여다 봄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마지막 한 가지를 말해야 하는데, 이건 위의 세 가지와 구별됩니다. 자연, 역사 그리고 양심을 통해 알게 되는 하나님의 뜻은 오해되고 곡해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역사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여서, 교회를 세상과 더욱 멀어지게 하는 그런 사람들을 우리는 적지 않게 알고 있지요. 때론 알 수 없는 자연의 변화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무언지 몰라 당황할 때가 있습니다. 양심... 얼마나 쉽게 타락하게 됩니까? 그래서 자연 역사 양심만을 보아서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데 온전히 알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아주 구체적으로 보여주신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됩니다. 성경말씀 속에 하나님의 마음이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을 들어볼까요?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세상과 우리를 향하신 구체적인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됩니다. 서로 사랑하라 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서로 사랑할 때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대로, 사랑의 법으로 살아갈 때에 갈등하고 불안하고 두려워하던 삶이 참된 평화와 기쁨을 누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를 향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두 가지로 이야기해 줍니다.
첫째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입니다. 주님께서 어떻게 사랑하셨는가? 자격을 정하시고 그 기준을 넘는 자들을 품으신 것이 아닙니다. 금을 지우고 내려오셔서, 발아래에 계셔서 발을 닦아 주심으로 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가장 더러운 것을 품어 주는 것. 그것이 주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이고 교회는 그런 곳이 되어야 합니다. 상처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문제없는 사람이 없지요. 그걸 덮어주고 싸매주고 그러라고 주님께서 여기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런 교회가 되길, 그런 공동체가 되길, 그런 사람들이 되길 축복합니다.
  둘째, 어떻게 사랑하는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은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을 먼저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가까운 곳으로부터 시작하신 사랑입니다. 제자들, 당신께 나아온 사람들을 사랑하셨고, 그 사랑이 여기 우리에게까지 전해진 것이지요. 사랑은 옆의 사람들, 여기 찾아 나아 온 사람들을 예수님처럼 섬기고 사랑하고 품는 것이어야 합니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늘 사랑할 만한 사람만 있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현실은 그렇지 않지요.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는 사랑할 수 없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목회하면서 제 모습을 돌아보게 됩니다. 제일 힘든 일이 사랑하는 일입니다. 새벽마다 기도 주님 제게 사랑이 없습니다. 사랑하게 해 주세요. 하고 기도하게 됩니다. 멀리 있는 사람 사랑하는 건 쉽지요. 그러나 가까이 있는 사람 바르게 사랑하는 일 참 힘들고 어렵습니다. 주께서 함께 하셔야, 그 분의 사랑으로 사랑하여야 가능한 일입니다.
한국은 오늘이 추석입니다. 오늘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 중 하나가 교통체증일 것입니다. 하지만, 막혀도 즐거운 게 고향가는 길입니다. 멀어도 즐겁습니다. 고향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이란 하늘고향 가는 길입니다. 막혀도 멀어도 즐겁습니다. 우리 인생은 기실 사랑하며 가는 복된 여행길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은 그의 또 다른 편지 요한일서에서 이렇게 증거합니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바라기는 이 교회가 하나님 뜻을 분별하는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먼저 말씀에서 알게 된 하나님의 뜻 - 내 곁에 있는 사람을 예수님처럼 사랑하라는 복되고 귀한 사명을 감당합시다. 그래서 그 말씀을 기준으로 자연도, 역사도, 양심도 모두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고 있음을 기억합시다.
  한 가지만 더 생각합니다. 사도 요한은 그렇게 우리에게 사랑을 말하면서 꼭 성령님의 일하심을 함께 증거합니다. 오늘 13장이 끝나고 이어지는 14장은 성령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요한일서에도 서로 사랑하라는 권면이후에 그의 성령을 주신다고 말합니다. 이건 무슨 이야기입니까?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완성이 바로 이 사랑인데, 그것은 성령님과 함께 함으로만 가능하다는 얘기입니다. 내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위로부터 부어지는 성령의 능력. 그 사랑으로 사랑할 때 가능합니다. 그런 사랑의 소식이 계속해서 전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