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2일 설교 - 수정교회에서 나눈 마지막 말씀, 행복한 나무 시편 1편

행복한 나무, 시편 1 - 수정교회 마지막 주일 (2014 6 22) 설교

시편 1편과 2편은 시편의 서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성경의 각 장마다 소제목이 붙어 있는 유일한 책이 바로 이 시편인데 요즘 나오는 성경책의 소제목들은 20세기가 지나서야 편집자들이 붙인 것입니다 시편 1편과 2편만 그 소제목이 없지요. 아마도, 시편 전체의 주제를 나타내는 머리말이기에 특별히 제목을 붙이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과 나눈 대화인 이 시편은, 지난 해 넘기는 예배 때도 말했듯이, 시간의 신비 앞에서 읽기 좋은 책입니다. 디트리히 본훼퍼 목사님은 시편을 성서의 기도라고 합니다. 마치,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고 알려주신 주님의 기도처럼 시편을 읽다보면 독서가 아니라 기도를 하고 있는 우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인 제가 이 교회에서 마지막으로 말씀을 전하는 날입니다. 정말 신비롭게도 시간이 흘렀습니다. 여러분 각자 각자를 처음 만났던 날은 저는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그리고, 이제 잠시 페북과 문자로만 만나야 합니다. 함께 읽는 마지막 말씀으로, 이 시편을 정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의 삶이 행복하고 울창한 나무 같기를 바라며, 또 기도하며 함께 시편 1편을 생각해 봅시다.

여섯 연으로 기록된 오늘의 말씀, 그 첫번째 말은 예수님이 산 위에서 하신 여덟 가지 복에 대한 이야기를 연상하게 합니다. 우리 말 성경으로는 복 있는 사람은 어찌 어찌 한다 라고 되어 있지만, 사실, 원문의 뉘앙스는 복있는 사람의 삶에 대한 묘사라기 보다는 복있는 삶을 위한 지침 혹은 삶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팔복의 문법처럼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는 사람, 죄인의 길에 서지 않는 사람 그리고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 이렇게 읽는 것 더 정확할 듯 합니다. 영어 성경도 그런 뉘앙스를 가지고 있지요.
  
행복하려면, 이것들을 하거나 쫓지 말라는 말로 시편은 시작됩니다. 바로 악인의 꾀, 죄인의 길, 오만한 자의 자리 이지요. 성경은 무엇무엇을 하지 말아야 복이 있다라고 말해 줍니다. 무엇을 쫓는가에 따라, 말하자면 무엇을 추구하는 가에 따라 우리 삶의 복. 그 삶의 질이 결정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지난 한주간 무엇을 쫓으며 사셨습니까? 하나님 원하시지 않는 길을 걷지는 않았는지요? 오만하게 굴거나 그런 마음을 품으시지는 않으셨습니까? 혹시 지금 충분히 행복하지 않다면, 우리가 쫓지 않아야 할 것만을 추구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기 때문은 아닐런지요?

어쩔 수 없이 무언가를 쫓아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면, 우리가 바랄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두번째 연입니다. “율법을 쫓는 것. 그 말씀을 쫓는 것이 복된 길이다

히브리어를 잘 하지는 못하지만, 원어의 뜻이 알려 줄 수 있는 것을 하나만 생각해 볼까요? 복이라는 말은 아솨르 입니다. 아솨르 라는 말에는 길을 가다, 나아가다 라는 말이 들어 있습니다. 복은 그 사람이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나 이제까지 이룬 것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옳은 길로 나아가고 있느냐 하는 것으로 평가됩니다. 그래서 성결교 신학대의 이성훈 교수는 시편 1편을 주석하면서, 그 제목을 걸어가야할 그 길이라 이름 붙여 놓았습니다.

참 복을 위해 어디로 가야 합니다. 어떤 길을 걸어야 합니까? 율법을 즐거워하는 삶, 그리고 그것을 마음에 깊이 새기는 삶이 행복한 삶이라 성경은 말합니다. 물론 여기서 율법이라 함은 토라, 창세기, 출애굽기 같은 책들을 의미하지만 우리 주님은 그 율법의 가장 중요한 것을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들을 사랑하는 것. 참 행복이란 다름 아닌 하나님 사랑, 그리고 이웃사랑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이제 이 말씀도 마지막으로 드리게 되는군요. 행복하십시오. 그러려면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들을 사랑하며 사십시오. 그런 삶을 추구하며 사십시오. 바로, 물가에 심겨진 나무처럼 말입니다.

시인은 3연부터 인생을 나무에 비유합니다. 다윗의 노래라면 사막에서 지어진 노래일 것입니다. 물이 귀한 지역에서, 시내를 따라 심겨진 나무들은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잎도 무성하고, 열매도 맺고광야 같은 이 로렌스 땅에서 참 그리운 풍경이지요. ^^ 하지만 나무의 행복은 그 하나의 번영에 있지 않습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소설을 아시지요. 소년에게 그늘과 열매, 목재와 쉴 수 있는 그루터기까지 내어주면서 책의 모든 페이지는 작가 쉘 실버스타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나무는 행복했습니다

우리 수정교회의 이름은 계시록 22장의 말씀으로부터 만들어 졌습니다. 하나님의 때에 "수정"과 같은 생명수가 보좌로부터 흘러 나오고, 그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길이 강을 만들고, 그 강 좌우에 생명 나무가 자라 납니다. 그리고, 그 잎사귀와 열매가 만국을 치료 합니다. 에스겔이 본 환상이고, 또 요한이 본 환상입니다. 저는 깊은 마음으로 여러분들이 그런 나무들이 되기를, 주께서 주신 힘과 능력을 가지고 세상을 치유하는 나무 같은 사람들, 그래서 행복한 나무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시인은 짧은 시를 마무리 하면서 의인의 길은 주님이 인정해 주시지만, 악인의 길은 망한다 라고 선언합니다. 세상 일이 꼭 그런 것 만은 않은 것처럼 보일 때가 있지요. 3장 후반부에는 의인들이 하는 일마다 잘 된다고 합니다. 음... 거짓말 같기도 합니다. 여전히 악하고 약삭 빠른 자들이 성공하는 것 같은 세상입니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잘 되는 일, 안되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이 시는 여전히 참입니다. 우리의 욕심대로 되는 것. 그것이 잘 되는 일이라면, 성경이 거짓이지요. 얼마나 많은 신실한 사람들이 만사 형통과는 무관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하지만, 마지막 절을 다시 보지요. 악인은 망하는데, 의인은 성공한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정하신다고 말합니다. 어떤 성공을 바라십니까?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면 된 것이지요. 그가 좋다고 하시면 그것으로 행복한 것이지요. 이것 말고 또 우리가 얻을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인정해 주지 않으시면, 눈에 보이는 악인의 성공. 그것들은 다 복스럽지 못한 일입니다. 성경은 반복해서 하나님 없는 세상의 성공적이 얼마나 가벼운 것인지, 허탄한 것인지를 말해 줍니다. 잊지 않고 살아가셨으면 합니다. 점점 힘이 많은 힘을 갖게 되고, 점점 더 나이를 먹어 갈 수록 진짜 성공이 무엇인지 올바로 깨닫고 살아가셨으면 합니다. 

그 동안 고마웠습니다. 부족한 점도 많았지만, 참 행복했습니다. 언젠가 다시 만납시다. 윤법을 쫓는 그 길 위에서 행복한 얼굴로 말입니다. 그 때, 우리 주님 안에서 얼마나 아름답게 성장했는지를 서로에게 보여줍시다. 나중에 만났을 때, 얼마를 벌었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서로 자랑합시다. 

흔들리는 세상 가운데, 진리에 깊이 뿌리 박고 필요한 이들에게 그늘을, 열매를 그리고 놀이터를 제공해 주는, 우리 예수님이 하셨던 그 일을 계속해 나가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행복한 나무이기를 소원합니다

평화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