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희생자와 남겨진 가족들을 생각하는 예배. "아파하시는 하나님" - 마태복음 25장 31절 – 40절

세월호 희생자와 남겨진 가족들을 생각하는 예배
아파하시는 하나님 - 마태복음 25 31– 40

세월호가 수많은 생명과 함께 바다에 가라앉은지 4개월이 지난 지금, 여전히 광화문에는, 그리고 한국의 주요 도시 곳곳에는 노란 리본이 매달려 있습니다. 무사 귀환을 바라던 이 리본이 이제는 정의롭고 제대로 된 사회를 만들어보자는, 필사적인 외침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세월호라는 그 끔찍한 사건을 통해 마음이 찢어진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지금도 그 억울함을 풀고자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고자, 그들을 향한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고자 이 예배가운데 나왔습니다. 예배는요, 기독교적인 예배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부르심과 우리의 응답으로 정의될 수 있습니다. 사실, 내일이 저희 교회 첫 예배여서 기도하고 준비할 일도 많은데, 이 예배를 드리는 것이 좋다고 자꾸만 생각되었습니다. 하나님 주신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아파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지금도 아파하고 있는 한국 사회를 위해 하나님께 나아오라는 마음 말입니다.
그것은 토요일에 특별히 있는 한 예배에 참석함을 넘어서, 하나님이 원하는 삶을 살라는 초대라고 생각합니다. 우린,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따라가겠다고 마음 먹은 진짜 제자들은 주린자들, 목마른자들, 헐벗고 병들고 옥에 갇힌 자들의 아픔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하는 일이 바로, 우리가 그토록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하나님께 하는 일이기 때문이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25장은 교회의 봉사활동이나 사회활동에 기초가 되는, 참 많이 읽히는 본문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지요. 마지막 때가 되면, 모든 사람들은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갈라지게 될 것이다. 오른 쪽에 있는, 양과 같은 사람들에게 임금님은 말할 것이다. 너희는 세상이 시작될 때부터 준비되어 있던 복을 받아라. 왜냐하면 너희들은 내가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 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어 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그들은 의아해 했지요. 저희가 언제 그랬습니까? 그러자 임금되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다.”
간혹 이 본문은,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어서 양이 되자그래서 천국에 가자 이렇게 받아들여집니다. 쉽고 그럴 듯 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맞는 말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천국에 간다고, 또는 믿음을 통해 이 땅에서 하늘 나라의 삶을 살아간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일 이 믿음이 진짜 우리 안에 있다면,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원자가 되신다는 이 믿음이, 정말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으면 우리는 오른편으로 분리된 양과 같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참 믿음을 간직한 자라면 아파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밖에 없지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거기 계시기 때문입니다. 임금되신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들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다. 그렇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그 곳에서 함께 억울해 하시고 배고파 하시고 아파하고 계십니다. 그 크신 하나님은 사랑 때문에 우리 중에 가장 작은자와 자신을 동일시 하시는 분이십니다.
인간들의 죄가 만들어 놓은…  돈 때문에 사람의 생명을 우습게 여겨 배를 불법으로 개조하고, 위험한 항해를 강행하고또 마땅히 있어야 할 구조작업이 전혀 행해지지 않고, 그 가운데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통곡하며 사죄하지는 못할 망정 자기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또 다른 불법을 자행하고.. 이 말도 안되는 세상 가운데, 이 창조의 아름다움이 말끔하게 사라져 버린 것 같은 세상 속에서 우리 하나님은 가장 많이 상처 입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들과 함께 하라고, 아니, 하나님 자신과 함께 하자고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오른쪽의 양과 왼쪽의 염소가 있지요. 옳은 양. 그리고 그릇된 삶을 산 염소가 있습니다. 염소의 잘못은 무엇입니까? 그들을 누군가를 병들게 하거나 옥에 가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누군가 병들었을 때, 억울한 일을 당하였을 때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제 시작하는 우리  교회를 포함해서 한국사회의 모든 교회들이 이 분명이 다른 두 가지 삶의 방식 중, 옳은 양의 삶을 선택했으면 하고 기도합니다.
교회는 가만히 있지 말고, 가만히 있으면 다 죽는 거니까, 이 기울어가는 세상 속에서 가만히좀 있지 말고 그들의 자리에 내려가서 함께 아파하며 함께 회복되는 기적을 경험하여야만 합니다.

첫 번째 할 일은 로마서 12장의 말씀처럼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것입니다. 자신의 일인 듯 최선을 다해 함께 아파해야 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아파함에 그치지 않고, 젖은 눈을 가지고 옳음을 위해, 더 이상 그런 아픔이 없는 세상을 위해 함께 일해야 합니다. 변화되고 구원받아야 하는 세상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
공감의 능력을 상실한 사람들이 점점 많아 지는 듯 합니다. 주님께서 누가복음 7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시거든요. 이 세대를 뭐라고 할까비유하자면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는 것과 같구나.. 하십니다. 마치 2000년 전의 말씀이 지금 오늘날의 한국 사회를 두고 하시는 말씀 같습니다. 다른 사람의 문제를 자신의 것으로 아파하시는 예수님처럼 우리도 그렇게 살도록 지어졌습니다.
그리고 함께 일어나야 합니다. 정의를 위해서 애써야 하고, 삐뚤어지고 어긋난 이 땅을 회복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 오랜 시간 동안 기도 뒤에 숨어 온 것도 같습니다. 기도가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 마음을 알았다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더 이상 교회가 게토와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한국 교회는 역사적으로 매우 자랑스러운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민족의 앞날이 어두웠던 시절, 일제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민족대표 33인 중에 기독교인이 16명 그리고 천도교인이 15명이었습니다. 천도교의 교리는 많은 부분 기독교의 가르침을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정의로운 세상을 향한 그 아름다운 열정이 다 어디로 가버렸는지요... 안중근 의사의 서거 하기 전 옥중에서 썼다는 경천이란 글자가 제 마음에는 깊이 남아 있습니다. 하늘을 두려워하라…  
하늘이 두렵습니다. 비단 광화문 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땅을 보아도 그렇고요,  여전히 인종 때문에 사람을 갈라 놓는 이 땅, 미주리 퍼거슨 뿐만 아니라 바로 이 곳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은 너무 많이 누리는데, 정말 많은 사람은 최소한의 것들도 갖지 못하는 이 세상에 살면서 하늘이 두렵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지금 이 이상한 세상 속에서 아파하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지금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내가 주리고 헐벗었을 때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주님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