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 된 사람들 - 에스겔 47:1-12


나라를 잃은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자기 민족을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25 , 기름 부으신 왕은 비참하게 적국에게 유린당한 폐위하였고, 14 전에는 그리도 중요하게 생각하던 고향의 성전이 무너졌습니다. 지금은 포로의 신세가 되어 있습니다. 희망이 없어 보이는 , 하나님은 예고 없이 그를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환상을 보여주시지요.  그날의 환상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그가 나를 성전 문으로 데리고 갔다. 성문의 문지방으로부터 물이 흐르기 시작하였다.”

현실은 절망적이었지만, 에스겔이라는 청년은 주가 주신 환상 때문에 매일처럼 사람들에게 희망을 이야기할 있었습니다. 그는 남들이 보지 않는 것을 보며 살았습니다. 그에게 하나님이 주신 희망이란, 사람들이 보는 것을 보면서 살아가는 일이었습니다.

나만 있는 것이 있다고 말할 때에, 조심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은 보통 미래를 본다던지, 귀신을 본다던지 이런 생각합니다. 물론 특별한 기회에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주께서 우리에게 예언의 은사나 기적적인 일을 허락하십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경우, 거의 모든 경우에 미래는 우리에게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렇게 보여주시지 않아야만 우리는 성실하게 지금을 살아갈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과 만나면 이런 이야기 하지요. 10 후에 우리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특히 이제 졸업하는 사람들, 10년이 아니라 당장 6개월 후에 어디로 갈지 모릅니다. 어떤 분들은 아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분들에게 기도를 받으러 가고 그럽니다. 그런데, 저는 그걸 믿지 않습니다. 행여 너무나 낙심되어서 지금을 살아갈 없을 주께서 그런 식으로 우리에게 희망을 주실 모르지만, 기본적으로 미래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미래를 알고 싶은 욕심은, 어쩌면 우리가 하나님이 되려고 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여러분 모두의 10 , 아니 6개월 후에 대하여 이야기할 있습니다.

여호와를 사랑하고 섬기면, 그와 겸손히 동행하면, 그를 주인으로 모시고 살면, 평화롭고 깊은 삶을 있을 것입니다. 어느 곳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예수와 함께 하면 그곳이 하늘나라 것입니다.”

 그것이 제가 맡은 예언 입니다. 뻔한 이야기라고요? 어쩔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확실한 예언이기 때문입니다.

에스겔이 받은 환상이 그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성전이 무너지고, 포로의 신세로 살아가고 있지만, 주께 돌아오면 사랑하시는 백성을 회복 시켜주신다는 것입니다. 요한이 계시록 마지막 장에서, 에스겔의 환상을 다시 한번 받는데, 의미도 이런 것입니다. 성도 몇명이 모이면, 몇월 며칠에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그런 판타지 소설이 아니라, 주님을 믿고 기다리면, 박해와 고난 속에서도 분명히 그가 교회와 거룩한 성도들을 회복시키실 것이라는 환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도행전 2 17절의 말씀은 유효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자녀들은 예언을 하고,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노인들은 꿈을 것입니다. 우리는 환상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주시는 환상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현실로부터 도피하게 하는 환상이나, 사회 부적응자로 살아가게 만드는 망상이 아니라, 우리 삶을 하나님의 목적에 맞게 이끌어 내고, 지금 여기서 하나님 나라를 시작하게 하는 거룩한 비젼 말입니다. 삶의 어떤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게 만드는 환상. 그런 의미에서 환상은 믿음입니다.

주께서 에스겔을 부르십니다. 이미 차례에 걸쳐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골짜기에서 마른 뼈들이 다시 살아나는 일을 보았습니다. 성령이 숨을 불어 넣으실 , 그들은 다시 생명이 되었습니다.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성전의 거룩한 장소로부터 물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2절에 따르면 물은 동쪽으로 흐릅니다. 주님의 천사가 에스겔의 손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 천척,   500미터를 걷습니다. 물을 측량하면서 말입니다. 그쯤 가서 보니까 물이 발목에 오릅니다. 그리고나서 다시 만큼을 측량하며 걸었습니다. 이제는 무릎까지 옵니다. 다시 500미터. 이제는 물이 허리에 차고 마지막 500미터를 측량한 후에는 물이 강이 됩니다. 사람이 능히 건널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다음 환상으로 넘어가기 전에 가지만 생각해 봅시다 물이 결국 생명을 살리게 되는데, 발원지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물은 한번에 콸콸 쏟아지기 보다는 조금씩, 발목 깊이로부터 시작합니다. 2km 따라 가야 드디어 수영할만한 강이 됩니다. 물은 성전의 오른쪽으로 흐릅니다.

6절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이제 물은 강을 이루었습니다. 강둑에 앉아서 보니까 좌우편에 나무가 많이 자랐습니다. 물이 아바라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렀습니다. 아라바는 지금의 사해를 가리킵니다. 보좌의 생수가 사해에 이르자 바다물이 되살아납니다. 고기가 많아지고, 사람들은 그곳에서 평화롭게 그물질을 합니다.

9절은 말합니다.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것이다. 물론 진창과 개펄 중에 살아나지 못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서 아름다운 강의 행진이 방해받는 것은 아닙니다. 환상은 강가에서 자라난 나무에 대한 이야기로 끝이 납니다. 나무에는 매달 열매가 맺히는데, 먹을만하고, 잎사귀는 치료하는 약재가 된다는 입니다.

저는 환상이 좋습니다. 읽어도 읽어도 좋습니다.
주님을 모신 곳에서는 항상 생명의 물이 흐르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공동체로서의 교회가 되었건, 주님을 주로 모신 가정이 되었건, 자신의 주인이 예수라고 고백하는 개인이 되었건, 성전으로부터 생명의 물은 흘러 넘치기 마련입니다. 메마르고 아픈 세상을 살리는 물은 주의 성전과 보좌로부터 출발합니다. 나는 생명의 물이다. 나를 마시는 자는 목마르지 않다 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우리 모두는 목마름을 느끼지요. 무언가 결여되어 있고, 채워지지 않음을 느낍니다. 아무리 좋은 환경에 있어도 우리 안에는 채워져야 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우리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의 궁극적인 문제는, 성전으로부터 흐르는 생명수로 인해 해결될 것입니다.

그런데, 물의 시작은 그렇게 화려하지 않습니다. 500미터를 걸어봐야 그저 발목 정도를 채울 뿐입니다.  태백에 가면 검룡소라는 곳이 있습니다. (사진) 특별할 없는 개울이 중요한 것은, 여기가 한강의 발원지이기 때문입니다. 영광의 시작은 언제나 작은 모습입니다. 누구나 삶의 시작은 작은 법입니다.

하나님이 회복하시는 일도 그렇습니다. 한번에 믿음의 거인이 수는 없는 법입니다 한번에 믿음의 거장이 되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 시간이 필요하고, 훈련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시작은 작아도 소중한 법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검룡소를 출발한 물이 흐르는 방향이 동쪽입니다. (이스라엘 지도)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의 동쪽에는 여리고가 있고, 사해가 있습니다. 사해는 해수면보다 낮아, 물이 고이기만 하고 나가지 못합니다. 뜨거운 태양 때문에 물이 증발하여 바다보다 다섯배나 많은 염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어떤 생명도 없습니다. 죽음의 바다라고 이름 붙여진 이유입니다.

그런데, 성전의 물은 그쪽으로 흐릅니다. 그저 흐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바다를 살려 냅니다. 강이 흐를 수록 깊이는 더해집니다. 생명을 살리는 힘과 깊이가 더해져서 결국 이르는 곳은 세상의 가장 낮은 곳입니다. 원래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니까, 은혜의 생명수도 낮은 곳으로 흘러야지요.

예수님이 그러신 분이었습니다 가장 낮은 곳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신 분이었습니다. 교회도 모습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예배 마칠 때마다 세상으로 흘러가자고 노래하는데, 결국 가야 곳은 낮은 곳입니다. 발목 높이의 작은 물로 시작해도 좋습니다. 결국 끊임없이 흐를 때에 주께서 우리의 물줄기를 강과 같이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다음 주에 김밥 쌉니다.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갈 돈입니다. 투자되어도 돌아오지 않는 . 하지만, 주께서 주님의 방식으로 살려내실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 살려 없을지 모릅니다물을 받아들이지 않는 땅은 갯뻘과 진토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때에, 주께서 다른 방식으로 땅을 살려 내시겠지요. 하지만, 우리는 강물의 흐름을 멈출 없습니다.

그림 몇번 보여 드렸죠. 우리 강처럼 살아갑시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예배하면, 그래서 우리가 처한 곳이 성전이 되면, 그곳으로부터 주께서 생명수를 흘려 보내실 것입니다. 처음에는 발목만 채울 만큼 작아도, 결국 생명은 낮은 곳으로 흘러 것입니다.


 우리 그렇게 살아갑시다. 흐르는 강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