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읽기 좋은 여름 3. 거라사에서 생긴 일 (5장 1절 - 15절)

이번 여름, 매주 장씩 마가복음을 읽고 있습니다. 함께 읽고 계시지요?

5장은 예수님께서 거라사 지역으로 가셨다고 합니다. 지도를 볼까요? 이스라엘은 크게 지역으로 나뉩니다. 갈릴리, 사마리아 그리고 유대입니다. 주님은 갈릴리 분이신데, 출생지는 베들레헴입니다

유대지역, 베다니, 여리고 이런 곳들이 서울 분당 이렇다면 갈릴리는 시골입니다. 빌립이라는 제자가 예수님께 부르심을 받자마자 친구 나다나엘을 만납니다. 그리고, 말하지요. 끝내주는 사람을 만났는데, 나사렛 출신의 예수라는 사람이야. 그러자 나다나엘이 이야기합니다. 1:46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있느냐나사렛이 여기입니다.

예수께서 하신 대부분의 리쿠르팅은 갈릴리 지역에서 이루어집니다. 갈릴리 지역을 걸으시다가 말이죠. 그리고 가버나움에서 가르치시고, 많은 사람을 고치십니다. 지금도 그곳에 가면 town of Jesus 라는 간판이 붙어 있습니다. 그리고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십니다. 오늘은 다시 바다라고 불리는 갈릴리 호수를 다시 여행하십니다.

거라사, 데가볼리 지역은 이방 땅입니다. 로마의 군인들을 먹이기 위해 돼지가 사는 땅이었고, 유대인들은 신경쓰지 않는 땅이었습니다. 4장까지 많은 가르침을 주신 후에, 4 35절에 이르면, 밤이 되어 바다 쪽으로 가자고 말씀하십니다. 밤에 푹풍우가 불지요. 제자들은 무서워 하지만 예수님은 배에서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이리도 믿음이 없느냐예수님을 배에 태우고 있었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선생님. 이렇게 부릅니다. 나의 주인님이렇게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바다의 흔들림에 함께 흔들릴 밖에 없었습니다. 주께서 바다를 잠잠하게 하셨고, 그들은 거라사에 이르릅니다.

그렇게 위험하게 바다를 건너와서 주님 하신 일이 무엇인지 아세요? 21절에 주님은 다시 배를 타고 맞은편으로 건너가십니다. 거기서 가지 일을 하셨습니다. 귀신들린 사람을 치료해 주셨지요.

예수께서 내리시니 악한 귀신 들린 사람 하나가 무덤 사이에서 예수와 만났다.” 귀신들렸다무슨 생각이 아니나요? 성경은 결코 귀신의 모습을 흘리는, 산발을 여자의 형태로 그리지 않습니다. 우리의 문화가 채색한 것이지요. 귀신들린 자를 치유하시는 것은 마가복음에 번정도 나옵니다. 제자를 부르시고 처음 하신 일이 1 21절에 악한 귀신들린 사람을 고치신 것입니다. 다음이 오늘 본문이고요, 7장에서는 수로보니게 여인의 악한 귀신 들린 딸을 고쳐 주십니다. 그리고 9장에서도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시지요.

과연 귀신 들렸다라는 말은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일까요? 악한 귀신 들린 사람. 원어로는 안트로포스 프뉴마티 아카타르토 이라고 합니다. 악한 영혼 안에 있는 사람. 사로 잡혀 있는 사람. 그러니까, 성경에서 말하는 미친 사람이란 악한 영의 지배를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마가 복음을 읽는 내내 말씀드리지만, 주님의 관심은 우리가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늘 나라입니다. 그런데, 여기 하나님이 아닌, 악한 영의 지배 속에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개의 악한 영에 대한 이야기 중에 오늘의 본문은, 그런 사람의 모습을 비교적 자세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그는 마을이 아닌 산에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려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악한 영은 우리로 하여금 어울려 살지 못하게 하고, 홀로 지내게 합니다. 혼자 있는 좋아하는 일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더라도 우리는 모두 관계하며,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고립시키고 단절 시키고 갈라 놓는 것이 바로 악한 영의 일이지요.
성경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악한 영의 모습은 바로 에덴 동산의 뱀입니다. 그가 처음 . “하나님이 정말로 너희에게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느냐? 뱀이 악한 이유는 서로를 갈라 놓고, 의심하게 만들고 함께 살지 못하게 합니다.

사람은 산에서도 무덤 사이에서 지낸다고 말합니다. 살아 있으니 죽은 입니다. 희망과 생명력 속에 살아야 사람이 항상 죽음을 생각합니다.  쇠고랑으로 묶어 없다고 합니다. 때론 악한 영이 파괴적인 힘을 주기도 하지만, 결국 자기에게만 상처를 뿐입니다.

 악한 영의 지배를 받는 이의 가장 특징은 바로 7절의 물음에서 드러납니다. 당신이 없이 크신 하나님의 아들인 알겠는데, 그게 나랑 무슨 상관입니까그냥 버려 두십시오. 회복에 대한 희망을 져버리게 합니다.

제가 알기로, 우리 중에 쇠사슬을 끊을 있는 사람도 없고 아파트 대신에 무덤에서 잠을 자는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악한 영의 통치가 아니라 하늘 나라의 통치를 받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가끔 안에서 악한 영이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주님의 인도하심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이미 여러 말씀 드렸지만, 제가 많이 믿는 마귀가 있습니다. 바로 섭섭마귀입니다. 세상에는 섭섭마귀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섭섭마귀의 하는 일은 뭐든 섭섭하게 느끼게 합니다. 섭섭마귀의 지배를 받으면 사람들과 어울려 수가 없습니다. 교회만 가면 섭섭합니다. 동아리 모임만 가면 섭섭합니다. 섭섭 마귀와 동행하면 사람들은 나를 인정해 주지 않고, 무시하는 것만 같습니다. 누군가의 눈빛이나 웃음 소리만 들어도 그런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에게 섭섭한 마음이 생기면, 힘은 대단히 파괴적입니다. 오랜 관계의 끈을 한번에 끊어 버릴 있습니다. 섭섭하게 사람이 없어졌으면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가 나쁜 일을 겪으면 마음이 통쾌하기도 합니다. 나를 서운하게 대하지 않는 사람을 찾아 떠나지만, 거기 가서도 다시 섭섭마귀에 드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을 다스리고 있는 악한 영이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결국 있을 곳은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들 . 무덤가 밖에 없습니다. 섭섭마귀에 들면, 집에 있게 되고, 가상의 현실을 살고 싶어지게 마련입니다.

사실, 이름이 우스워서 그렇지 섭섭마귀는 대단히 무서운 영적 도전입니다. 얼마 한국에는 섭섭마귀에 들어서 강남역 화장실에서 무자비한 살인을 저지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미국에서는 불특정 다수에게 섭섭한 마음이 들어 총기를 난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섭섭하면 행복하지 않고, 섭섭하면 하나님을 떠날 밖에 없습니다.

가롯유다가 예수님을 것은 예수님이 섭섭해서 입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것은, 다윗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섭섭해서 입니다. 성경의 가장 번째 살인사건인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는, 아벨의 제물만을 받아주시는 하나님이 섭섭해서 입니다. 수많은 교회들이 섭섭한 때문에 갈라지고, 수많은 가정들이 섭섭마귀의 힘에 의해 파탄에 이릅니다.

섭섭마귀를 물리치는 가장 첫번째 단계. 내가, 또는 사람이 섭섭마귀에 들렸구나 하고 자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귀신 들린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리고는 물으셨습니다. 이름이 무엇이냐아무도, 사람을 대할 귀신의 이름을 물어보지 않았겠지요. 그냥 귀신 들린 거지 귀신을 이름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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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와 어려움은, 우리가 그것을 대면하고 이름 정복할 있습니다. 이름은 레기온로마의 단위입니다. 아주 많은 수의 악령이 그는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많은 악한 기운이 우리를 다스리려고 해도, 주님의 마디면 우리는 악의 지배가 아닌, 하나님의 통치 속에 있습니다. 악한 귀신아, 사람에게서 나가라.
  삶에서 악한 영의 도전을 느낄 ,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를 물어 보아야 합니다. 그냥 힘들다가 아니라, 내가 힘든지,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잠잠히 이름을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구합니다. 주께서 악한 귀신을 안에서 몰아내 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치유함을 받은 사람은 가족에게로 돌아갑니다. 주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대신 가족에게 돌아가서 내게 하신 일을 말하라고 하시지요. 가장 가까운 사람이 그에게서 일어난 변화를 알아차릴 것입니다

거라사에서 생긴 일이 여기서도 일어나길 소원합니다. 주께서 하나 때문에 폭풍치는 건너오시길. 이방인의 땅에서, 오실 이유가 없는 데도 때문에 오셔서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여 주시길거라사에서 마디에 몰려간 군대처럼 마음의 악한, 잘못된 다스림을 제하여 주시길그래서 다시 마음의 주인이 되시어 나를 통치하시길하늘 나라를 살게 하시길


안에 생명과 평화가 아닌, 미움과 전쟁의 생각이 때마다 저는 본문을 생각합니다. 주님 나를 회복시키셔서 가족에게, 가장 가까운 이웃에게 주님의 능력을 전파하게 하소서. “그리하니 사람들이 놀랐다 야이기의 결론입니다. 주가 계신 곳에 놀라움이 있습니다. 주여 우리와 함께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