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대강절 두번째 말씀 "생일 초대" (누가복음 2장 8절- 20절) - 2015년 12월 6일

누가복음 2 8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9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15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16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17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하니 18 듣는 자가 다 목자들이 그들에게 말한 것들을 놀랍게 여기되 19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20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함께 예배하는 것이 기쁨입니다.
 오늘은 대강절 번째 주일, 마음으로 평화의 초를 밝혔습니다.  대강절의 기간동안, 교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주일에 하나씩 개의 초를 밝힙니다. 초는 순서대로 희망, 평화, 기쁨 그리고 사랑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성탄절에는 예수님을 상징하는 가장 초를 밝히지요.

특별히 오늘 우리가 밝힌 촛불은 평화를 상징합니다. 평화의 빛이 어둠을 물리치기를 기다립니다. 지난 수요일에 샌버나디노에서는 총기사고가 있어서 14명의 사람이 희생당했습니다. 아마도 IS 연관된 테러일 것이라 합니다. 한국에서는 의학전문대학원생이 여자친구를 폭행하도고 정당한 처벌을 받지 않은 일이 이슈인가 봅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창조섭리로부터 너무 멀어져 있는 합니다. 폭력이 일상인 세상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주께서 평화를 허락하시길, 주님의 사람들이 평화의 일꾼이 되어 어두운 세상을 밝히길 소원합니다.  초를 밝히는 일은, 어둠에 머물지 않겠다는 선언입니다. 작고, 언제 꺼질지 모르는 약한 힘이지만 우리는 초를 밝히며 하나님의 나라를 않겠다고 다짐하며 분의 오심을 기다립니다.  

 , 하면 생각나는 것이 생일잔치이지요. 저희 아이들은 생일 초를 불어서 끄는 굉장히 좋아합니다. 열번은 해야 생일을 맞는구나하고 만족하지요. 예수님의 첫번째 생일날 만일 누군가 생일 케익을 들고 마굿간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면 사람들은 누굴까요? 바로 목자들입니다. 자리에 유일하게 초대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동방방사요? 아마 그들은 예수님이 태어나시고 한참 후에 방문한 합니다. 이유는 다음주에 말씀드리지요.

생일잔치에 초대되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이 절친입니다. 어릴 적에 피아노 학원에 다녔습니다. 교회 권사님이 공짜로 가르쳐 주신다고 해서 다들, 태권도 학원에 다니는데, 저만 피아노 학원에 다녔습니다. 한번은 친구들이 나만 놓고 햄버거 가게에서 모였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학원 끝나고 생일 맞은 친구가 쐈는데, 저는 피아노 학원 다니니까 어쩔 없었다는 겁니다. 친구랑 절교했습니다. 생일에 초대받는 일은 그렇게 중요합니다.

그것도 아이를 낳자 마자 곳에 있는 사람은 믿을만하고 마음을 나눌만한 진짜 이웃이지요. 오늘은 예수님의 탄생에 유일한 축하손님들에 대해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목자들은 우리가 성화에서 보는, 깨끗하고 하얀 옷을 입고 귀여운 어린 한마리를 안고 있는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들에서 사는 사람들이었고 초장과 물을 차지하기 위해 투쟁해야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진 1. - 우리는 보통 목자 하면 이런 이미지를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는 (사진 2) 가까울 확률이 높습니다.

 얼마 전에 거룩의 정치학에 대해 말씀드린 적이 있지요? 예수님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많은 사람들은 로마에게 이스라엘이 지배 당하는 이유가 어떤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구약성서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인과응보적인 세계관입니다. 그런데, 죄를 자신의 것이라고 하면 좋은데, 인간이란 본래 죄를 다른 사람에게 돌리려는 나쁜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성경을 이용하여, 이스라엘의 어려움이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 창녀, 세리, 장애인과 같은 사람들의 탓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들은 거룩한 부류로부터 철저하게 소외되고 누명을 쓰며 사회를 유지하는 희생양이 됩니다.

부류가 바로 목자들입니다. 거룩하지 못한 사람들. 그들에게는 동물 냄새가 났겠지요. 들에서 자는 밖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밤이 되면 사람들은 안으로 들어오고 동물들은 밖에 있어야 하는데, 그들은 밖에서 동물들과 밤을 새고 있었습니다. 안식일에도 누군가는 양을 돌보아야 했기에 안식일은 율법의 방식대로 지킬 없었습니다. 음식을 먹으며 손을 씻을 수도 없었고, 유목을 하다보면 며칠이고 밖에 나가 있어야 했기에 성전을 때에 찾을 수도 없었습니다. 대체로 교육받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들의 목소리도 없었다.

 게다가, 대부분은 자기 땅이 없이 이곳 곳을 돌아다니며 양들을 먹여야 했기에, 초원과 물을 확보해야 하는 그들의 삶은 전쟁터였습니다. 실제로 지금도 가축을 먹이는 일과 물을 구하는 일로 유목민들 사이에서는 총격전이 오고 간다는 다큐멘터리를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탄생의 기쁜 소식은 성밖에 있는, 거룩하지 못한 이들에게 먼저 들려옵니다.
저는 천사가 지나가다가 우연치 않게 목자들을 만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목자들의 초대에 복음의 위대함이 담겨있습니다. 그것이 복음의 위대함 입니다.
그들은 어쩌면 동방박사들처럼 변변한 선물 하나도 드릴 없었던 사람들일지 모릅니다. 그런데, 성경을 조금만 살펴보면, 첫번째 성탄이란 본래 이런 사람들의 잔치였습니다.

첫번째 성탄의 이야기는 나사렛이라는 동네로부터 시작됩니다. 지금이야 예수님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지만, 당시에는 누구도 알지 못하는 그냥 작은 시골 동네입니다. 마리아는 어떻습니까? 성경은 그녀에 대해 요셉과약혼한 여자라고만 설명합니다.( 1 27) 어느 가문 사람인지, 행실이 어떠했는지 우리는 그저 짐작할 뿐입니다. 누가복음 1장의 엘레사벳에 대한 소개를 보면 대비가 뚜렷합니다. (엘리사벳은 아론의 자손이고, 율법을 지키는 없는 사람이라고 소개되고 있습니다.) 엘리사벳의 남편은 제사장이고, 마리아의 약혼녀는 목수입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성탄의 중심 인물은 엘리사벳이 아니라 마리아 입니다.

다음. 무대는 여관의 스위트룸이 아닌 거라지이고, 화려함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없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는 이렇게 이름 없는 도시에서 이름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시작됩니다.

 오늘 설교의 결론부터 말씀드릴까요? 만약 당신이 이름 없는 사람이라고 느껴지신다면, 당신의 삶이 초라하고 너무 보잘 없게 생각된다면, 기뻐하십시오. 하나님이 일하시기 가장 좋은 조건을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적어도 크리스마스 스토리를 보면 그렇습니다. 만약 당신이 힘도 있고, 도시 출신의 능력자라면 두려워하십시오. 어쩌면, 깨어 있지 않으면, 성탄의 이야기로부터 소외될 있습니다
  
누가 성탄의 기쁨에 초대됩니까? 성탄의 이야기는 궁전이 아닌 마굿간, 요람이 아닌 밥통으로  화려하고 훌륭한 사람들이 아니라 소외되고 잊혀진 사람들이 초대됩니다. 하나님의작은 사람들에 대한 우선하는 관심 예수를 품은 마리아의 노래에서 분명해 집니다.

누가복음  1 45, 힘센 분이 나에게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름은 거룩하고, 46, 그의 자비하심은, 그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대대로 있을 것입니다. 51 그는 팔로 권능을 행하시고 마음이 교만한 사람들을 흩으셨으니, 52  제왕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사람을 높이셨습니다. 53 주린 사람들을 좋은 것으로 배부르게 하시고, 부한 사람들을 빈손으로 떠나보내셨습니다 54  그는 자비를 기억하셔서, 자기의 이스라엘을 도우셨습니다.

생일잔치에 초대받고 싶으시다면, 태권도 학원에 다녀야 합니다 생일에 초대되려면 생일맞은 사람과 닮아야 합니다. 주님은 낮고 천한 자리, 거기서 함께 계시려고 노력하신 최선을 다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높아지려고만 하고 화려한 것만 쫓으려 하면 생일에 초대되겠습니까?

첫번째 생일잔치에 낮고 내세울 없는 사람이 초대되었다면 우리는 그리해야 합니다. 만일, 많은 복을 받아서 삶이 마리아나 목자와는 이미 다르다면 어떻습니까? 방법은 그들의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율법 학자가 목자들의 친구였다면, 그는 생일 잔치의 소식을 듣게 되지 않았을까요?
. 사실, 이런 설교를 하기가 두렵습니다. 왜냐하면 또한 그들과 온전히 함께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따뜻한 안에서 몸을 씻고 깨끗한 옷을 입고 잠을 잡니다. 아직 그들 속으로 온전히 뛰어 들기에는 믿음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조금씩 거리의 사람들, 밤에 일하는 사람들과 삶을 나누려고 노력합니다. 그들의 좋은 친구가 되면, 예수님의 좋은 친구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방식은 여러가지 입니다. 다음 주에 우리는 김밥 팔아서 난민들에게 보냅니다. 그것도 함께 하는 방법입니다. 주커버그 같은 사람은 자신의 돈으로 기업을 만들어 지속적인 선행을 한다고 하더군요. 2030 컨퍼런스에서 들었던 김진수 장로님은 사업으로의 선교를 통해 원주민의 친구가 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말씀을 마치지 전에 가지만 생각해 볼까요? 목자였을까요? 세리도 있고, 병자도 있고 거룩하지 못하다고 여겨지는 다른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목자였을까 궁금하지 않으세요?

   목자가 하는 일은 예수님으로 땅에 오신 하나님의 일하심과 매우 닮아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여러차례 자신을 목자다 하고 말씀해 주십니다. 이스라엘의 선왕 다윗도 목자였고, 출애굽을 이끌었던 모세도 40 동안 양을 치는 사람이었습니다. 일을 통해 양떼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배우고 닮아갔던 것이지요. 우리 모두가 아는 시편 23편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주님은 나를 기르시는 목자다. 그래서 내가 부족합이 없다. 사망의 골짜기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의 지팡이가 나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양치기의 힘은, ‘함께 있는 입니다. 하나님이 낙농업자나 목장주가 아니고 우리의 양치기이신 이유는 그가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사망의 골짜기에서도 바로 옆에 그의 지팡이가 있기 때문에 무섭지 않고, 목이 마를 때도 걱정이 없는 것은, 그가 목마름을 아시고 함께 물가로 내려가 주시기 때문입니다. 양치기는 언제나 양과 함께 있습니다.

우리 때문에 고약한 냄새가 베고, 안식일의 율법도 어겨야하고 사람들의 수군거림도 들어야 했지만 그는 결코 우리를 떠날 없습니다. 양치기 이기 때문입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의 경륜과 양치기의 삶이 닮았습니다. 그러니 주께서 그들을 좋은 친구로 제일 먼저 초대하지 않으셨을까요?

우리의 선한 목자를 찬양합니다. 그분이 모으시는 영광된 생일잔치에 닮은, 낮은 사람들과 함께 초대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