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7일 주보 칼럼 - 하나님의 뜻

  신앙인들의 아름다운 고백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 이라는 말이지요. 힘든 시기를 믿음으로 견뎌낸 성도들이, 고난의 보자기에 쌓여 있던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했다고 말하면서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나보다 라고 간증할 때면 듣는 이들의 마음이 뭉클합니다.


  그런데, 교인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이 아름다운 말, ‘하나님의 뜻’ 이 오용되고 남용되는 경우를 종종 발견합니다. 얼마 전에도, 어떤 정치인들이 일제 강점과 한국 전쟁을 ‘하나님의 뜻’ 이라고 말했다가 큰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킨 경우가 있습니다.
 
  신앙인들은,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뜻’ 이 분명히 존재함을 고백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특별한 목적 속에서 우리와 세상을 만드시고 매 순간 이끄시며 결국 하나님과 연합하게 하시려는 ‘뜻’을 품고 계십니다. 이는 성경을 통해 알려졌고, 삶의 역사를 통해 고백됩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에 대해 ‘하나님의 뜻이다’ 라는 말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유한한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모두 알 수 없을뿐더러, 때로는 하나님이 원하지 않으시는 일이 이 땅에 일어나기도 합니다. 침략과 수탈은 생명과 평화의 하나님이 품은 뜻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일제 치하에서 자유와 해방을 위해 태극기를 들고 저항하였던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이 하나님의 뜻일 것입니다. 전쟁과 학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지만 그 일을 태초부터 계획해 놓으시고 스케쥴대로 실행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기 위한 노력 속에서 수없이 많은 아름다운 유산을 남겼지만, 종종 하나님의 뜻을 오해하는 실수도 저질렀습니다. 십자가 원정이나 히틀러의 등장을 하나님의 뜻으로 여겼던 목회자들이 있고, 경제적인 풍요와 현세적 안위를 하나님의 뜻과 직결시킨 신앙인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실수 속에서 세상은 교회로부터 조금씩 멀어져 갔습니다.


  아름다운 말, 그래서 우리의 신앙 가운데 계속하여 고백되어져야 하는 이 말. “하나님의 뜻”을 잘 사용하는 쉬운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과 공동체의 경험을 분리하는 것입니다. 개인적 경험에 대해서 우리는 믿음의 고백을 올려 드릴 수 있습니다. 이는 당연하고 복된 일입니다. 하지만 공동체가 함께 겪은 일에 대해서는 신중하여야 하며 그 일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겸손한 마음으로 살펴 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하나님이 하셨다’ 라는 이 아름다운 고백이 무척이나 비신앙적인 ‘운명론’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설교 시리즈 ‘평균대 위의 신앙’ 1/6 인생.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선택 사이에 서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