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y of Ruth 3/3, "회복” (룻기 2장 8-13절) - 2015년 2월 15일

함께 예배하는 것이 기쁨입니다. 오늘부터 일주일에 하나씩, 교회에서 자주 사용하는 말이나 행위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 중에 교회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배려이고, 익숙한 사람이라 하더라고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좋을 같아서 입니다. 첫번째로 생각해 단어는 아멘입니다. 많이 쓰는 단어이지요. 말의 뜻은 진실로 그러합니다입니다. 계시록 3장에 보면, 주님을 아멘이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라고 표현합니다. 진실하신 분이라는 말이지요. 요한복음에는 진실로 진실로 이르노니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 여기에 사용된 말이 아만이라는  동사의 활용입니다. 그러니까 아멘 한다는 것은 진짜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가끔 이런 말을 강요하시는 목사님들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마음 속으로 진짜 아멘의 심정을 갖고 말씀을 보고 찬양을 하는가 입니다.

룻기의 마지막 시간인데요, 룻기를 통해서도 우리 마음 속에 아멘 이라는 반응이 생겨나기를 바랍니다. 지난 시간, 룻이 자신도 어려운 가운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결정 사랑과 돌봄을 선택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성경은 아버지 뜻대로 행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갈 있다고 가르치는데, (마태복음 7) 룻이야 말로 왕이신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말씀을 보기에 앞서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볼까요? 지난 주간 얼마나 아버지 뜻을 실천하며 살았습니까? 지난 주에, 말씀을 귀로만 듣지 말고, 나도 어렵지만 어려운 상황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밥도 주고, 연락도 하자고 말씀드렸는데, 얼마나 그렇게 사셨습니까? 주님께 사용되기 원한다면 그분의 방식을 택하십시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내용은 그런 자들에게 허락되는 회복의 은혜입니다. .
앞선 시간에 대로 폭력의 시대 가운데, 룻과 나오미는 살아갑니다. 시련의 모압에서 엘리멜렉 그리고 아들인 말론과 기룐 모두 죽습니다. 나오미는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려고 마음 먹습니다. 그리고 며느리에게 축복의 작별을 고하지요.
나오미의 축복 장면에 잠깐 멈춰 볼까요? 1 8절입니다. “너희가 죽은 남자들과 나를 선대한 같이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선대하시리라. 각각 새로운 남편을 만나고, 평안을 얻기 원한다” 13절입니다.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다. 그러기 때문에, 너희 때문에 나의 마음이 아프다나오미는 며느리들의 아픔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떠나 자유롭게 살라고 며느리들을 자신의 삶으로부터 밀어내고 있습니다. 나오미는 자신의 고통 속에서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며느리들을 자신의 아픔으로부터 지켜내려 합니다. 진실한 사랑을 대하는 룻은 어떻습니까? 지난 시간에 살펴 보았던 것처럼, 룻은 나오미를 떠날 없었지요. 나오미의 가슴에 새겨진 상처와 홀로 흘리고 있는 눈물을 알기에, 떠날 없던 것입니다. 그것이 자기 희생을 요구하는 일인지 몰랐겠습니까? 그럼에도 룻은 사람답기를 멈출 없었던 것입니다.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룻은 욕망이 잡아끄는 대로 처신하지 않고, 시어머니의 아픔을 덜어줄 있는 길을 택했습니다. 서로 사랑하며 살라는 왕의 명령을 기억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그렇습니다. (요일4:8) 이러한 희생적 사랑을 통해 룻은 나오미의 삶을 회복시킵니다.   이것이 사사기에서는 씻고 찾아볼 없던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 속에 회복되어야 하는 공동체입니다.

베들레헴으로 돌아온 룻과 나오미는, 다른 이의 타작마당에 가서 이삭을 주어 오는 일로 생계를 꾸려 나갑니다. 그리고, 우연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섭리 속에 보아스라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죽은 시아버지 엘리멜렉의 친족이었고, 성경은 그를 유력한 . NRSV 성경은 prominent rich man 이라고 표현합니다. 아름다운 love story 조금 살펴 볼까요? 보아스가 자기에게 속한 땅을 둘러보러 나왔습니다. 그런데, 아리따운 여인을 발견합니다. 사람들을 부리고 있는 작업 반장에게 묻습니다. 이는 소녀냐그러자 작업 반장이 이야기합니다. “나오미와 함께 모압 소녀인데, 이삭을 줍게 하여 달라기에 그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침부터 잠깐 쉬고 계속 일하고 있습니다
보아스가 룻에게 다가 갑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소녀여, 이삭을 따려거든 다른 밭에는 가지 말거라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내가 아랫사람들에게 말해서 건드리지 말라고 것이고, 목이 마르거든 소년들이 길어온 것을 먹어라.”
이러한 배려는 당시의 시대상을 생각하면 대단한 도움입니다. 룻기의 시간에 나눈 말씀을 돌이켜 보자면, 사사기 마지막에 벌어진 사건은 베냐민 지파에게 후손을 갖게 여자들을 구해 주기 위해 야베스 길르앗 남자들을 모두 죽인 . 그래서 여자들을 다시 베냐민 백성에게 일과, 그것도 모자라서, 실로의 여자들이 포도 수확 축제를 벌일 , 베냐민 자손들이 숨어다가 아내로 붙들어가지고 자기 땅으로 돌아가는 일이었습니다. 남편에게 속하지 않은 여인들은 그냥 성경 표현대로 하면자의로” – 마음대로 취하거나 버릴 있는 상황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런 와중에 보아스는 룻의 울타리가 되어 줍니다.
자기 살길을 찾아 시어머니를 떠날 수도 있었지만, 보살피고 사랑하기로 결심한 룻을 하나님께서는 울타리로 보호해 주십니다.  룻이 물어보지요. “ 이렇게 나에게 잘해 주시는 거예요보아스가 말합니다. 11절입니다. “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모에게 행한 모든 것과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일을 내가 분명히 들었다. 여호와께서 너의 행한 일을 보상하시기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네게 온전한 주시기를 원한다
그들의 사랑은 점점 깊어 갑니다. 14절이예요. 먹는데요, 보아스가 룻을 부릅니다. 그리고 조각을 초에 찍어서 먹여 줍니다. 그리고, 소년들에게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녀가 곡식 사이로 이삭을 주울 때에 그녀를 책망하지 말고, 그를 위해 조금씩 흘려라. 얼마나 멋진 남자입니까? 그런데 이야기는 여인이 남자 만나서 팔자를 고쳤더라는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여호와께 성실한 사람. 왕이 없던 시절에 왕의 가르침을, 신자의 삶의 방식을, 그러니까 자기 말고 남을 위해 자기 삶을 포기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어떤 위로를 주시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들을 통해 어떻게 세상이 회복되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 보아스는 지극히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 룻을 아내로 맞아 들입니다. 원래, 이스라엘 법에 따르면 땅은 영원히 민족 그리고 가문의 소유이거든요. 땅의 사용권이 거래되지, 소유권은 거래되지 않습니다. 다른 민족 그리고 다른 가문과 결혼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그런 이유 입니다. 땅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기 때문이예요. 룻의 시아버지인 엘리멜렉에겐 자기 소유의 땅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지역으로 떠나면서, 사용권은 다른 이에게 넘어 갔지요. 만일 엘리멜렉의 후손인 룻을 아래로 삼으면 사용권을 찾아 와야 합니다. 그것이 기업 redeem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물러온 땅이 자기의 것이 아니라 결국엔 엘리멜렉 가문의 것이라는 것이지요. 땅은 물러 주어야 하지만, 자기 소유는 없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기업 무를 자는 죽은 자의 친족 중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됩니다. 말하자면, 가장 가까운 친족이 룻과 결혼할 있는 우선권이 있는 것이지요. 3 후반부와 4장은 보아스가 모든 절차를 지켜서 룻을 합법적인 아내로 맞아들이는 과정을 설명하여 줍니다. 일이 보아스에게도 손해가 나는 일이었지만, 그는 현명한 여인 룻을 아내로 맞이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사이에서 새로운 생명이 잉태됩니다. 오벳. 그의 아들이 이새이고요, 이새의 아들이 바로 다윗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을 선택한 이들을 통해, 나오미는 자신의 후손을 얻습니다. 가문의 대를 이을 자를 주셨지요. 룻에게는 새로운 남편을 주셨습니다. 보아스는 현명한 아내 그리고 인류의 역사 속에서 제대로 부자 칭호를 얻게 됩니다. 자기의 혈통이 아닌 엘리멜렉 혈통의 자손을 보았기 때문에, 손해를 아니냐고요? 마태복음 1 5.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족보를 보아스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회복시키심을 믿으며 진리와 사랑을 선택한 룻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분은 왕되신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에 십자가를 선택하셨습니다. 온전히 아버지로 하여금 자신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사랑 때문에 몸을 참혹한 십자가 위로 던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그를 믿는 모든 이들에게 구원이 주어졌음을 고백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자기 사람을 통해 세상을 회복시키시는 방법입니다. 이제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사순절의 기간,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지기를 바랍니다. 가운데 왕의 다스림이 우리 각자와 공동체 가운데 실현되기를, 그래서 어그러진 세상이 우리로 인해 조금씩 회복되어 나가길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