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설교 “왜”] 3/3 왜 우리 교회인가 - 생명 그리고 평화 (로마서 8장 5절 - 6절) - 2014년 9 월 28일

함께 예배드리는 일이 큰 기쁨 입니다. 기도해 주신 덕에 달라스에서 열린 목회자 학교에 잘 다녀왔습니다. 사역자로서의 부르심을 새롭게 하고, 이 땅에 주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오늘은 메디슨 감리교회의 첫번째 설교 시리즈, ‘의 마지막 시간입니다. 왜 예수님이어야만하는지, 그리고 왜 교회가 필요한지에 이어 이 시간에는 왜 우리 교회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본격적으로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두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첫째, “왜 우리 교회인가라는 질문은 왜 우리 교회여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이 아닙니다. 여기 메디슨을 비롯해서 세상에는 많은 교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들은 자신들의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존재의 몫을 열심히 담당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사역하는 사람들이지, ‘우리교회만 옳고 좋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 메디슨 감리교회를 통해 이루기 원하시는 뜻이 있으실 것입니다. 둘째로, ‘왜 우리 교회인가라는 질문은 단순히 조직이나 공동체의 성격에 대한 질문이 아닙니다. 이것은 바로 여러분 각자의 삶과 세계관에 대한 물음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은 너희가 살아있는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 그곳이 교회라면 여러분의 마음, 여러분의 직장, 여러분의 가정이 또한 교회 입니다. 우리 교회라는 말은 메디슨 감리교회를 말하기도 하지만, 바로 당신 자신을 말하기도 합니다.

몇 해 전, 캔자스의 로렌스라는 동네에서 개척 교회를 시작할 때 있었던 일입니다. University of Kansas 한인 학생회장과 부회장을 만나는 자리가 있었지요. 부회장은 한번도 교회를 다녀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매우 친절한 사람이어서 즐거운 대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 때 만난 회장은 결국 함께 예배 드리게 되었고, 다음 해에 세례도 받았지요) 대화가 끝날 때쯤, 그 부회장이 제게 물어 왔습니다. ‘근데, 교회를 왜 차리세요?’ 그 이상하고도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이 아직도 머리 속에 남아 있는 건, 질문하는 사람의 해맑은 표정 때문인지, 아니면 그런 질문 하는 사람이 처음이어서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 질문을 통해 아주 근본적인 것들을 돌아보게 되었지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예배하고 싶어서요

그렇습니다. 교회의 존재 이유는 예배하기 위해서 입니다. 구약성서 속에서 세상이 창조된 후 가장 큰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로부터 창조된 이야기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예상태에 있는 이들의 신음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을 구해주시는데, 모세를 통해 파라오에게 하는 말씀이 이러합니다. “나의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나의 절기를 지켜야 한다’ (출애굽기 5:1) 이집트에 재앙이 내릴 때마다 반복되는 말씀입니다. “나의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예배할 수 있게 하여라출애굽의 근본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백성이 자유인의 상태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 입니다.

예배란 무엇입니까? 말 그대로 절하다, 완전히 항복한다 라는 말입니다.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시고, 그 분의 뜻대로 살겠다는 고백을 하는 것이지요. 영어로는 worship, worth+ship 이라고 하지요, 그분의 가치 worth 를 고백하고 인정하는 행위가 바로 예배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 교회입니까? 이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교회를 통해 함께 모인 사람들이 그분의 뜻대로 살아가기 위해서 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마음 속에 깊이 담아두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은 바로 생명과 평화 입니다. 감히 바라기는, 우리 교회의 비전인 생명과 평화의 예배자라는 말이 여러분 삶의 비전이 되었으면 합니다.

사랑하면 같은 생각을 하게 되지요. 우리 가운데는 미혼인 분들이 있는데, 결혼 상대를 구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가 같이 이야기하면 재미있나?’ 입니다. 생각이 잘 맞는 사람과 대화하는 일은 세상에서 누려야 하는 가장 큰 기쁨 중 하나입니다. 同志를 같는 다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참으로 큰 힘입니다. 사랑하면 점점 더 같은 생각을 갖게 되지요. 그리고 생각이 비슷해지니 서로 나누는 대화가 더욱 즐거워 집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과 한 생각을 품게 됩니다. 그리고 그 생각을 하나님과 나누는 것, 성경 속에 그 분의 생각을 발견/확인하고 기도 가운데 서로의 생각을 나눈 것이 점점 더 즐거워 집니다. 여기, 오늘의 말씀은 하나님의 생각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말해 줍니다.

성령에 속한 생각은 생명과 평화입니다.  ( 8:6)

삼위일체 하나님은 한 생각을 품으셨습니다. 창조의 때에 주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에덴을 지으사 그 곳에서 평화로운 삶을 살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분과 다른 생각을 품었지요. 예수님은 다시 그 잃어버린 생명을 회복시키시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버리셨습니다.  그렇게 평화의 왕이 되셔서 우리를 그 높은 삶의 지경으로 초대하셨습니다. 창조주 하나님, 구원자 예수님의 생각이 온통 생명과 평화에 관련된 것이라면, 성령도 역시 한 생각을 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사람이 된 여러분들에게 이 생각을 품기를 부탁드립니다. 바로 생명과 평화 말입니다.

우리 예배 공동체를 통해 생명과 평화가 누려지고 전해지길 소원합니다. 수학 해볼까요? 생명과 평화를 누리고 전한다. 괄호를 풀면, 생명을 누리다, 생명을 전하다. 평화를 누리다 평화를 전하다. 이렇게 됩니다. OK? ㅎㅎ

우리는 먼저 생명을 누려야 합니다. 요한복음 14장에서 주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로 인해 우리는 영생을 누리고 또 사는 것처럼 사는, 참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충분히 누려진 삶의 기쁨은 주변으로 확산될 수 밖에 없지요. 그 생명은 전해 져야만 합니다. 명령이기 때문에 그렇고, 또 동시에 그렇게 사랑하며 함께 살 때만우리의 삶이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 안에 빼앗길 수 없는 평화가 누려질 것입니다. 생명을 약속하신 주님께서 요한복음 14 27절에 다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평화를 주겠다. 세상이 주는 것과는 다른 평화이다. 누구도 이 평화를 너에게서 빼앗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평화를 간직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질적으로 다른 평화, 그 평안함이 우리 안에 누려질 것입니다. 그리고 생명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아름다운 평화는 우리를 통해, 우리의 손과 발을 통해 이 세상 가운데로 퍼져 나갈 것입니다. 주께서 우리를 평화의 사람으로 부르셨습니다. 우리 때문에 갈등이 그치고, 전쟁이 사라지는,  그것이 하나님의 생각이니까, 우리가 그 뜻대로 움직이는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왜 이 교회를 이 곳에 심으셨는지, 왜 교회 된 당신을 2014년 가을, 이곳 메디슨에 살게 하시는지그것은 결국 교회와 우리의 삶을 통하여 이 땅 가운데 생명과 평화의 생각을 펼쳐내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이 예배 공동체를 통해서 함께 하는 모든 사람이 생명과 평화의 사람이 될 것을 믿습니다. 성령 하나님의 생각그 생명과 평화의 길에 동행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