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ies 믿음의 거장들 3. 야곱의 부러진 엉덩이 뼈 (창세기 32장 24절 - 33장 10절) - 2016년 2월 14일

함께 예배하는 것이 기쁨입니다.
믿음의 거장들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함께 읽었지요. 세상을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회초리를 분의 눈물을 보고  소돔의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하나님과 거래하는 아브라함을 보았습니다. 지난 주간 땅과 하늘의 중재자로 살아오셨습니까? 아니면 하나님보다 앞서서 누군가를 심판하거나 정죄하느라 바쁘셨는지요?

오늘은 야곱의 이야기를 함께 읽고자 합니다. 그대로 좋은 이야기 시간이 것입니다.
이야기를 잊은 사람들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오늘이 무슨 날인 아십니까? 발렌타인 데이이지요. 그리고 도마 안중근 선생이 사형 선고를 받은 날입니다.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했다는 이유로 그는 1910 2 14일에 사형 선고를 받습니다. 1심이었거든요. 항소하지 않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이런 편지를 씁니다.

장한 아들 보아라.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건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나라를 위해 맘먹지 말고 죽으라. 대의를 위해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아마도 편지가 어미가 쓰는 마지막 편지일 것이다. 수의를 지어 보내니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재회하길 기대하지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세상에 나오너라

그의 어머니 이야기는, 우리 마음을 숙연하게 합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평화가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알게 합니다. 이야기가 없으면, 감사도, 희망도 그리고 미래도 없습니다.

 “안중근의 글 경천"

글은 그가 죽기 한달 전에 글입니다. 그의 세례명은 도마그가 세상을 위해 목숨을 바친 것은 그의 신앙 때문이었습니다.하늘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생명과 평화를 위해 자기를 던졌지요. 안중근의 이야기는 우리를 돌아보게 합니다.
사사기 2 10절의 말씀,
세대의 사람도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이스라엘이 무너진 이유는 바로 이야기를 잊었기 때문입니다. 땅에서 점점 신앙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셨나,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였나 우리가 점점 잊기 때문입니다. 바램이 있다면 우리가 듣는 이야기들이 우리를 다시 살려내기 바랍니다. 이야기의 위대함이 우리 안에서 확인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수천년을 이어져 이야기를 들을 준비 되셨습니까?

야곱은 이삭의 아들입니다. 아브라함의 손자지요. 쌍둥이였습니다. 그의 형은 에서. 성경이 있으신 분들은 같이 읽으면서 따라오시면 좋겠습니다. 창세기 25 25절에 따르면 먼저 나온 , 에서는 전신에 털이 많은 들사람 그리고 익숙한 사냥꾼이었다고 합니다. 쌍동이 동생 야곱은 조용한 편이었습니다. 아버지 이삭은 에서를 그리고 엄마인 리브가는 야곱을   좋아했습니다.

어느 야곱이 죽을 만들고 있는데, 에서가 사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야곱한테 그릇 달라고 하니까, 야곱이 그러지요. ‘장자의 명분을 나에게 팔라' 사실, 장자의 몫은 고대사회에서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에서는 배가 고파 죽겠는데, 그런 무슨 소용이냐며 장자의 명분을 팔아버립니다. 일이 씨가 되었던 것일까요?

시간이 흘러 아버지 이삭이 돌아갈 때가 가까워집니다. 장남인 에서에게 말하지요. 27장의 내용입니다. 내가 늙어 언제 죽을지 모르니 너를 축복해야겠다. 나가서 사냥을 해다가 좋은 음식을 오너라. 그걸 먹고 내가 너를 축복해야겠다 대화를 리브가, 이삭의 아내가 듣습니다. 그리고는 야곱을 부르지요. 맛있는 음식은 내가 줄테니 가서 형인 척을 하고 축복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작전은 성공합니다. 눈이 어두웠던 이삭은 약간의 의심을 하긴 했지만 결국하나님이 모든 복을 너에게 더하기를 바라며' 남김없이 그를 축복합니다. 아무 일도 모른 사냥에서 돌아온 에서는 야곱의 속임수를 알아채고 겪한 분노를 드러냅니다. 27 41절에서 화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

야곱은 이렇게 자기 형을 속인 사람이었습니다. 원래 그는 태어날 때부터 형의 발목을 붙잡고 나왔지요. , 성공적으로 장자의 권한을 획득한 야곱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도망자의 신세가 됩니다. 어머니인 리브가가 야곱에게 말하지요.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서 외삼촌, 라반의 집에 잠시 피해 있거라
야곱은 자기 삶을 성공으로 이끌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도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어떻게해서든 복을 얻고자 하였지요. 형을 속여서라도 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행복한 , 축복받은 삶에 대한 절실한 작전이 성공하는 순간 그는 집에서 쫓겨난 나그네의 신세가 됩니다. 그리고 라반의 집에서 일어나는 일은 암울합니다.

라반에게 갑니다. 밧단 아람이라는 아람 평야 그러니까, 리브가의 고향이기도 하고 아브라함이 떠나온 곳이고 그곳으로 갑니다. 거기 라반에게 딸이 있는데, 레아와 라헬입니다. 야곱은 둘째 라헬이 좋았습니다.예뻤거든요. 그래서 라반에게 말합니다. 내가 7 동안 당신을 위해 일할터이니 라헬과 혼인을 시켜 주십시오. 라반이 좋게 여겼습니다. 7년이 지났습니다. 창세기 29장의 20절에 보면, 칠년이 며칠 처럼 여겨되어 있습니다.

그토록 기다리던 그날, 야곱은 여인을 아내로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날이 밝고 보니 라헬이 아니라 레아인 겁니다. 라반에게 따지지요. 그랬습니까? 그제서야 이때까지 하지도 않던 말을 합니다. 어떻게 언니보다 동생을 먼저 보내겠는가그러니까 화내지 말고, 라헬도 당신의 아내로 삼아줄테니 다시 7년을 일하라고 합니다. 방법이 있나요. 야곱은 거기서 7년을 라반을 위해 일합니다.

그렇게 라반의 집에서 보낸 세월이 20년입니다. 야곱이 이제는 처가살이를 그만하고 떠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삼촌이자 장인에게 말하지요. 이제껏 일한 몫을 챙겨주십시오. 그러자 라반이니가 정하라' 합니다. 사실 라반의 재산은 야곱 때문에 많이 불어났거든요.

그래서 이런 제안을 합니다. 양과 염소 중에서 점이 있거나 털이 어두운 색인 것들만 내가 갖겠습니다. 라반이 오케이 합니다. 그렇게 말해 놓고 그날 바로 양과 염소 중에 있는 것들을 빼내서 자기 아들들한테 맡기는 거지요. 다음에 자기와 야곱 사이를 삼일 길로 멀게 합니다. 합치지 못하게 하는 겁니다.

그렇다고 그냥 물러날 야곱이 아닙니다. 그는 버드나무와 살구 나무 그리고 신풍 나무를 가져다가 가지를 벗깁니다. 그리고 양과 염소가 먹는 우물에 가지를 세웁니다. 당시에는 그런 방식을 통해 어미가 점이 있는 새끼를 갖게 된다고 믿었던 모양입니다. 튼튼한 양이 물을 먹을 때는 그걸 꽂고, 비실비실 것이 오면 가지를 뺍니다. 결국에 야곱의 가축은 튼실하고 라반에게 가축은 튼튼하지 못하게 됩니다.
눈치 채셨겠지만, 야곱의 삶은 그냥 계속 속이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야곱이라는 말의 뜻이속이는 ' 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분명히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를 통해 축복을 받았고, 밧단아람으로 떠나던 광야에서 자다가 하나님의 천사를 만납니다.

하지만 창세기 32장에 이르기까지, 그의 삶은 속거나 속는 삶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그에게 삶은 투쟁이고 전쟁입니다. 나면서부터 형의 발목을 잡았던 야곱은 누군가의 발목을 잡아야만 성공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다보니 다른 사람에게 발목을 잡히기도 합니다.

이제 고향으로 돌아갈 결심을 야곱은 더이상 그렇게 없었나 봅니다. 소유가 늘고, 자녀들도 많아졌지만 인생이 너무 피곤했나봅니다. 아들이 열한명. 수백 수천의 가축을 소유하게 되었지만, 부인도 네명이나 되었지만, 그렇게는 없었습니다.

32 3 이후로, 야곱은 고향으로 돌아오려고 하는데, 형한테 화해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돌아오는 소식은 형이 장정 400명을 거스리고 온다는 겁니다., 망했다… 20년이 지났지만 화가 풀리지 않았구나

7. 야곱은 심히 두렵고 답답합니다. 그래서 형이 떼를 치면 떼는 피하려고 자기 사람을 둘로 나눕니다. 그리고 거기서 밤을 지냅니다. 얍복강가에서 말입니다.
그곳에서 자녀들과 아내들을 먼저 보내고 홀로 건너편에 남아 있습니다. 야곱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때에 야곱에게 하나님의 사람이 다가옵니다. 야곱은 그를 그냥 돌려 보낼 없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하나님이시라면 이토록 어긋나 있는 야곱의 삶을 그대로 내버려 두어서는 안되는 겁니다.  

야곱은 하나님과 씨름합니다. 묻고 싶은 것이 많았겠지요. 약속하신 축복이 이런 것이냐고 따져 물어야 했을 겁니다. 성경은 그와 씨름하였다고 말합니다. 이제껏 답답하고 꼬이기만 하는 삶을 호소할 존재가 어디 있었겠습니까? 하지만 지금 야곱은 하나님께 묻고 매달릴 있습니다. 격렬한 씨름중에도 행복하지 않았을까요? 그러기에 밤이 새도록 씨름을 끝내기 싫었을 것입니다.

그는 지금, 모순과 과오로 얼룩진 자신의 과거와 맞서고 있습니다. 환도뼈는 모든 힘의 근원이 되는 입니다. 씨름 중에 뼈가 무너진 것은,   자신을 지탱해 왔던 모든 것이 무너졌다고 말합니다. 이대로는 안됩니다. 하나님, 삶이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렘브란트의 그림>

렘브란트는 씨름을 마치 서로를 안아주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냅니다. 이는 마치 진실한 춤사위와도 같아 보입니다. 치열한 싸움이지만, 행복한 맞잡음입니다. 서로 부등켜 안고 살을 대지 않고서나 씨름을 없기 때문입니다.

참된 복을 갈구하는 야곱에게 하나님은 다른 대신, 그의 이름을 바꾸어 줍니다. 야곱아 이제는 니가 이스라엘이다. 말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 혹은 하나님과 함께 승리를 거두었다 라고 해석됩니다.
자신의 힘으로 삶을 일으키려 , 야곱의 인생은 점점 꼬여만 갔습니다. 결국 남게 것은 가족 앞에서 심히 두렵고 떨리는 마음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야곱은 자신의 환도뼈가 아닌 하나님의 도움으로 서게 됩니다.

이스라엘로 변화된 야곱은 지금 형과의 화해를 위해 한발짝 한발짝 나아갑니다. 그리고 형을 만나지요. 극적인 화해의 장명 속에서 야곱은 이렇게 말합니다. 33 10절입니다. 형님 얼굴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봅니다.  

경쟁과 속임수로 얼룩져있던 그의 삶이 이제는 타인에게서 하나님을 발견하는 삶으로 변화됩니다. 그제서야 뻗고 편안히 있습니다. 형에게서 하나님의 얼굴을 야곱은 이제, 삶을 투쟁이 아닌 축복의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삶에 지친 여러분, 언제나 우리를 향해 비추어진 하나님의 얼굴을 서로에게서, 속에서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힘으로 해결할 없는 문제들이 하나씩 풀려나갈 것입니다. 하나님과 씨름한 순간, 하나님과 함께 삶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순간, 그는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