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ies "우리 사귀어요" 1/2 거룩한 삼각관계 (창세기 45장 1-10) - 2014년 11월 23일

함께 예배하는 것이 기쁨입니다. 오늘과 다음 주일은 인간관계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설교 시리즈가 잡히게 되었는지는 알고 계시지요? 전에 교인들을 모두 만나는 30 minute with the Pastor라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어떤 설교가 필요한지, 듣고 싶은지를 물어 보았는데, 다양한 이야기들 중에 가지 공동적인 이야기가 바로 어떻게 하면 좋은 관계 속에서 살아갈 있을까.. 였습니다. 연인 간에, 친구 간에 그리고 부모님이나 여러 관계들 속에서 어떻게 하면 평화롭게 있을까?  하는 물음이 우리 모두 안에 있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사실 굉장히 중요하면서도 안나오는, 어려운 질문입니다.
설교를 준비하는데 있어 저는 서론보다 결론에 훨씬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왜냐하면 설교의 결론은 설교자가 아닌, 예배자의 몫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결론을 쓰지 않기도 합니다. 설교의 진정한 결론은, 기도하시겠습니다. 라고 말하기 문장이 아니라, 바로 여러분의 삶입니다. 설교는 이곳에서 1 50 즈음이 아니라, 일주일간 여러분들의 일상을 통해 결론지어 집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질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죄송하지만, 저는 우리 관계를 하고 좋아지게 할만한 설교를 없습니다. 아니, 세상 어디에도 우리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노력 없이 자동으로 좋게 하는 설교란 없습니다. 로마서 2 13절은 율법을 듣는자가 아니라 율법을 행하는 자가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말해줍니다. 마태복음 7장에서 주님은, 주여 주여 하는 자가 아니라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갈 있다고 알려 주십니다. 사실, 크리스찬들의 이웃 관계의 정답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만큼 사랑하는 것이고, 사람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명령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아니, 인간관계의 문제는 세상이 지어진 후에 언제나 있었던 같습니다. 성경의 첫번째 책이 창세기인데, 실제 창조의 이야기는 앞의 장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뒤로 나오는 모든 이야기는 인간관계의 문제 이야기입니다. 형제가 서로 죽이고, 배신하고, 거짓말하고 속이고 미워하고 쫓고 그리고 화해하고그것이 바로 세상이 지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어쩌면요, 우리의 세상은 갈등 속에서 계속되는 창조를 경험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끊임없는 갈등과 투쟁 속에서 용서와 화해 그러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가 되는, 하나님의 마음을 배우는 과정 속에서 세상은 지어집니다. 관계를 맺기 불가능한 우리와 하나님이 관계하셨듯, 그리고 관계를 이끄시고 풀어가시듯, 우리도 그런 갈등과 화해 속에서 하나님을 닮아 갑니다. 그러니 갈등이란 은총의 수단일 밖에 없지요.
갈등은 원래 칡나무 자와 등나무 자의 합한 말이라고 합니다. 칡나무는 무언가를 타고 올라갈 시계 방향으로 자라고요, 등나무는 시계 반대방향으로 자란답니다. 그래서 함께 자라면 결코 어느 나무도 크질 못한다고 하네요. 그러니까, 결국 양보해야 있습니다. 하나는 다른 하나의 삶의 방식을 온전하게 받아들이고, 양보할 때만 공존이 가능합니다. 그러니 갈등을 극복하는 방법이 영적인 훈련일 밖에요.
정신과 의사 양창순은 인간관계에서 모든 사람이 기대하고, 그래서 갈등의 원인이 되는 것을 Recognition, Respect 그리고 Reward 라고 정리합니다. 굉장히 설득력 있다고 봅니다. 이것들이 서로 충족되지 않을 문제는 발생하지요.
저는 글을 읽자 마자 요셉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어쩌면 성경에서 가장 오랜 기간 동안 관계의 문제로 아파하고 가장 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바로 요셉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세상이 지어진 이야기, 창세기는 요셉의 화해 장면으로 막을 내립니다.
창세기 37 2절과 3절을 보면, 요셉의 성숙하지 못한 삶을 보게 됩니다.  열일곱이나 먹은 사람이,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일러 바칩니다. 채색옷은 요셉만 입히고 그러다 보니 형제들과의 관계는 일그러질 밖에 없었지요. 많이 가지고 있을 , 일이 때에 삼가하고 주위를 둘러 보아야 지혜로운 사람인데, 요셉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37 5절에 보면 이야기를 하는데, 형의 곡식단이 자기에게 절을 한다는 것입니다. 형들을 인정recognition하지 않지요. 한번 이야기를 하는데, 이번에는 형들 별이 자기에게 인사를 한답니다. 형들은 아버지와 동생으로부터 못하고 존중respect받지도 못하고 또한 마땅히 누려야 보상reward 받지 못합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3R 살피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그래서 누군가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적절히 그의 노력에 맞는 보상을 얻도록 살펴야 하는데, 요셉은 그것들에 실패합니다. 얼마나 처절한 실패였냐면, 상대방이 자신을 죽이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도 다들 한번씩 이런 실패의 경험을 갖고 있지요. 저도 인간관계에서 실패한 여러 경험이 있습니다. 때론 누군가를 존중하지 않아서, 때로는 누군가가 나를 존중해 주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이상 사랑할 없게 사람들이 있습니다. 복원할 있는 것들에는 최선을 다하지만 이제 그럴 있는 방법이 없는 관계들도 있습니다. 그저 하나님 앞에 내려 놓고 지혜를 구할 뿐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아픔을 통해 배워가고 성장해 갑니다. 요셉이 이야기는 다들 아실 테니 이야기를 짧게 하면, 요셉은 이집트로 팔려가고 보디발이라는 장군의 집에서 일을 맡아 보다가 아내의 모함으로 강간 미수범이 됩니다. 말하자면 그의 명성은 땅에 떨어집니다. 그가 받았던 인정Recognition 순간에 날아가지요.
옥에 갇히는데요, 거기서도 맡은 신하와 맡은 신하의 앞날을 예견하거든요. 술맡은 관원장한테, 당신은 복직할 건데, 나를 기억하라고 말해두지요. 그런데, 그는 복직된 후에 요셉을 잊어요. 존경한다는 말이 respect 다시 본다는 말이잖아요. 그런데, 자기가 자유를 얻은 후에 그는 요셉을 다시 보지 않습니다. 그리고 2, 700일이 넘는 시간이 흐릅니다. 잘못 없이 그렇게 2년이 흐릅니다.
그러는 동안 그의 능력에 대한 마땅한 보상reward 전혀 주어지지 않습니다. 꿈을 해석하고 누구보다 지혜로운 사람이지만 그는 어떤 보상도 누리지 못하는, 옥에 갇힌 신세입니다.
배신, 오해 그리고 개무시^^ 속에서 그의 인간관계는 조각이 나지요. 세상에 대한 원망만 가득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를 이지경으로 만든 보디발의 아내, 자신을 믿어주지 않은 상관, 자기의 말을 잊어버린 관원장, 그리고 모든 일에 원인을 제공한 그의 형들
그런데, 그러한 갈등과 어려움을 가지고 요셉은 무엇을 하냐면, 마치 모래를 품어 진주를 만드는 조개처럼 자신의 영혼을 보석처럼 성숙시켜 갑니다. 창세기 39 2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
요셉은 감옥에 혼자 있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관계 대상자들과 1 1 만나지 않았습니다.  모든 관계들이 파탄나는 곳에서 그는 하나님과 함께 살아 갖고, 모든 대상들과 거룩한 삼각관계를 이루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요셉에게 가지가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원망을 품지 않을 있었습니다. 두번째로 요셉은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다른 사람의 처지를 이해할 있었습니다. 사실, 가지가 하나님 사랑의 대표적인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죄로 인해 자신과 원수가 우리들에게 원망을 품지 않으셨습니다.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요한복음은 말해 줍니다. 그리고, 또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처지를 이해해 주시는 사랑입니다. 긍휼의 영어 단어인 compassion 누군가의 아픔에 함께 한다는 것이거든요. 요셉은 자신의 어려운 시간을 통해,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자기 형들의 마음을 이해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나중에 그들을 만날 사랑으로 대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오로지 하나님과 함께 때에만 우리가 3R 적절히 받지 못할 , 화가 나는 마음 대신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누구를 만나더라도 1 1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만나야 합니다. 거룩한 삼각관계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이야기를 짧게 하면 나중에 이집트로 형들과 동생이 곡식을 구하려 오지. , 요셉은 형들에게 자신을 알리면서,( 45 5). “나를 팔았다고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라고 말합니다. 말을 통해 요셉은 형들이 일을 좋은 방식으로 인정하고 recognition 그들을 형으로서 존중하고 respect  그들이 길을 마련하여 줍니다. reward 그리고 이러한 사랑의 말을 통해 오래된 원한 관계가 청산됩니다.
요셉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저는 요셉이 울었다는 말에 잠시 멈추어 서게 됩니다. 무너진 세상 속에서 온전한 관계는 눈물을 통해서만 세워집니다. 울음을 통해 용서의 마음도 생기고, 울음을 통해 하나님을 관계속으로 깊이 초대할 있습니다.
앞서 3R. 이게 중요하다고는 말씀드렸지요. 그런데, 인정과 존중과 보상이라는 것이 단순히 서로 조심스럽게 주고 받는다고 모두가 만족할 있도록 채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세가지는 모두 상대적인 것이어서 다른 사람이 받는 것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나 본래 그렇게 자기 중심적인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올바른 관계는 사실, 누군가의 양보, 내려 놓음으로만 가능합니다. 누가 그것을 있습니까? 인정과 존경과 보상의 다른 공급원을 가지고 있는 사람. 바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느끼는 사람이 그런 사람들 입니다. 크리스챤의 관계방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3R 매일처럼 느끼고 살아가는 . 거룩한 삼각관계 속에 거하는 사랑의 삶을 사는 영성가들이나 봉사자들이 있습니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세상 사람들을 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3R 충분히 받지 못하는 같은데도 건강한 영혼으로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요?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알아주심, 하나님의 소중히 여겨주심, 그리고 하나님의 채워주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코 3r 기대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때론 우리의 필요와 요구를 당당히 말해야지요. 그런데, 결정적인 때는 하나님과 함께 관계해야 합니다. 특히나 남들보다 조금 인정받고 싶고, 남들보다 조금 존경 받고 싶고, 남들보다 조금 챙기고 싶을 때는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창세기의 마지막은 관계의 회복으로 끝이 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여러분의 세상을 만들어 가시겠습니까? 누구와 틀어진 관계를 맺고 계신가요?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원한을 품지 말고, 사람의 서운함을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다시 평화를 이루어 가시기 바랍니다.
가장 좋은 모범이 바로 우리 예수님입니다. 땅의 사역 동안 어떤 3R 받지 못하신 . 하지만 온전히 하나님과 연합하여 살아가신 분을 하나님이 인정해 주셨고, 하나님이 높여 주셨고요, 하나님이 보상해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세상 모든 피조물들과 평화의 관계를 맺으시고 나아가 하나님과 우리를 연결시켜주시는 다리가 되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관계들도 예수님을 닮아가길, 단신과 나와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관계하며 사랑하길...어렵지만 조금씩 조금씩 그러하길 소원합니다